그게 별 것인가,
내가 그로 인해 화나고, 슬퍼하고,
미워졌다면 그게 그거지.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게 별 건가.
다만 그걸로 내가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게 된 거지.
부모님의 큰 다툼이 있고 얼마 후 어머니는 시골 외갓집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거처를 옮기기 전 어머니는 내게 '엄마 시골로 내려가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었고, 당시 나는 매우 불안하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고 집에서 그나마 의지할 수 있던 사람이 어머니였기 때문에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서 거처를 옮기는 방법을 선택하셨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지내는 것은 역시나 어려웠다. 집에 혼자 있어도 편하지 않았고, 가족들과 있으면 더욱 불편했다. 당시에는 가족 모두가 원망스러우면서도 가족을 원망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고 미웠다.
어머니 하고는 매일같이 통화를 했다. 오늘은 어땠는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등을 물어봤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통화의 내용은 '아버지'였다. 있는 곳만 다를 뿐 대화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전과 다르게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고,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를 봐야 하는데 어머니의 이야기를 토대로 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에 만약 부모님이 우리 모르게 다투었거나 어머니가 내게 그런 하소연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눈으로 가족들을 보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어느 때는 아버지가 나를 바라볼 때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자상하게 옅은 미소를 띤 채로 보실 때가 있는데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더 자주 봤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그런 아버지의 모습과 눈빛을 볼 때마다 나는 아홉 살 어린아이가 된 듯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어머니와 계속하는 통화가 내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초반에는 안정제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독이 된다는 결론이 났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줄수록 아버지와 멀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더는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두 분 모두의 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