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느꼈을 때는 있었을까
대견하다고 느꼈을 때는 있었을까
자랑스럽다고 느꼈을 때는 있었을까
차라리,
차분한 목소리로 힘들다 말해주지.
궁금한 눈으로 어떻게 할 거냐 물어보지.
그랬다면,
아등바등 살고, 쥐어짜도 괜찮았았을 텐데.
목표를 말해줬을 텐데.
부모님의 사이가 멀어질수록 나는 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었다. 나의 노력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 연세의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표현이 없어서 나는 이따금씩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생겼다. 아버지는 내가 나의 힘으로 용돈을 쓰고, 학비와 학자금을 해결해도 '잘했다.'라고 말해주시기보다 '당연하지.'라는 말을 하셨다. 오히려 내가 돈을 더 모으지 않고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아쉬워하셨다. 아버지의 아쉬움은 어머니와 다툼이 있을 때면 적나라게 드러났다. 나는 그것이 마치 숨겨놓은 진심이 폭발하는 것 같아서 더욱 나의 노력이 아버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니 하고는 어릴 적에는 많은 대화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어머니와의 대화도 불편해졌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나 때로는 '넌 알아서 잘하니까.'라는 식의 말과 가끔 과거의 서운했던 것을 말하면 '어쩔 수 없었어.'라는 입장을 내보이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 점점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나의 힘듦과 고민을 털어놓기가 어려워졌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태도는 전혀 달랐지만 그 안에서의 나는 같았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해도 어느 누구도 '잘하고 있어.'가 아닌 '더 해야지'라는 것이 느껴지거나 나의 노력을 당연하기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