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셋, 둘 중 하나

by DAON 다온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것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않는다는 것

그 관계에 진전이 없음을 뜻한다.


이해했거나 이해하기를 포기했거나

둘 중에 하나의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가족들에게 말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소한 이야기도, 무언가 부탁하는 말도 줄어들었다. 집에서 말수가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질문에 짧게 답하고 뒷말이 사라졌다.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어머니가 시골에 가시고 아버지와 언니하고 지내는 것은 내게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방법을 익히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함께 지내면서 서로 도우면서, 때로는 서로 맞춰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는데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면 본인의 의견을 내세우며 주장하거나 나의 부탁을 가볍게 넘기는 모습들을 나는 자주 마주쳐야 했다. 그러면서 내게는 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해주지 않을 경우에 돌아오는 그 말들이 아팠다. 사소한 부탁들이 거절당하고 사소한 부탁들이 늘어나면서 당시 나는 나의 가족들이 이해되지 않아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라도 하면 이해가 될까 싶어서. 하지만 이해보다는 포기가 빠른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래, 내가 하자.'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흔히 말하는 잔소리가 많아진다. 또 바라는 것이 많아진다.

말을 하든 안 하든 바라는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가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요구사항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요구사항을 받아줬을 때 상대도 내게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관계는 그것이 돌고 도는 것이다. 그 안에서 더욱 돈독해진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라도 바라기만 한다면 지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럼 그 관계는 더는 나아갈 수 없이 그대로거나 끝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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