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너로 인해

by DAON 다온

너로 인해 매우 행복했던 날들

너로 인해 설렘을 알았던 날들

너로 인해 상실감을 알았던 날들

너로 인해 외로움에 빠졌던 날들



부모님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졌고, 가족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을 때 다시 만났다. 고등학생 때 절에서 만나서 친해졌고, 성인이 된 후 잠깐 남녀관계가 되었다가 연락하지 않는 친구관계가 되었다. 정말 잊을만하면 먼저 연락이 오곤 했는데 나로서는 친구로는 지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밀어내기만 했다. 그러다가 내 상황이 힘들어지면서 더 이상 밀어낼 수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에게 위로받고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시작하고, 끝이 나면 정말 다시는 연락할 수 없는 사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시작했다.

내 곁에 나를 좋아해 주고, 그것을 표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꽤나 행복했다. 그때 나는 가족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저 가족이라는 의무감으로 지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만남이 이어지는 동안 설렘이 적응이 안 되면서도 그저 옆에 누군가 있고, 시시때때로 연락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 친구를 만나면서 이렇게 내가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생각 없던 결혼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커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짧은 시간의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어서 내 생활도 힘들었던 상황이라 내가 그 친구의 비해 모자란 것 같았고, 마음대로 챙겨줄 수 없었다. 그것이 혹시나 그 친구가 나를 떠나가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어졌다.

얼마나 만났을까, 갑자기 며칠 연락이 안 되더니 이별을 통보해왔다. 마지막으로 봤던 그의 얼굴이 너무 지쳐있어서 혹시나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헤어짐을 혼자 준비하고 있는 건가 생각하게 되었다. 신경이 온통 쏠려있어서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틀 정도를 보냈을 때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나의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이대로 끝이 날 수 없다는 생각에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붙잡았다. 그 순간에도 목소리로 헤어지자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무서워서 전화도 못했다. 밤새 울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서 보냈다. 봐도 안 봐도 상관없었고, 답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혼자가 되자 '나는 역시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욱 외로움에 허덕거렸다.

헤어짐의 후유증은 꽤 길어졌다. 한동안은 만나는 동안 번듯한 데이트도 각자 바빠서 못했으면서 함께 앉아있던 카페, 함께 걸었던 길에서 지나간 날을 떠올렸고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차라리 무작정 걷는 것이 더 나았다.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문득 떠올라서 쉬는 날이면 혼자 한참을 걷다가 어딘가에 앉아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다. 그러면서 내가 괜찮지 않음을 인정해나갔다. 그렇게 떠나가서 비워진 자리를 인정해나갔다. 그리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것이 왠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고 안정이 찾아왔다.

가끔 생각나기는 했지만 그 친구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때때로 신기했고 그리웠다. 헤어질 때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았는데 이별이 끝나고 나서는 오히려 그 사람보다 다른 모습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52. 그대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