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점점 없어지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때로는 너무 익숙해져서였고,
때로는 말해도 들어주지 않아서였고,
때로는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때로는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릴 적 가족들에게 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장난기가 많고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래서 내가 어딘가 며칠을 다녀오면 집 안이 조용했다는 말을 듣곤 했다. 부모님이 다투고 집 안이 겨울 같아도 나는 슬슬 눈치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장난을 쳤다. 일부러 더 많은 말을 하려고도 했다. 가족들과 함께일 때면 현재의 기분보다 몇 배 더 좋은 척 행동했다. 그래서 가족 나들이를 나가면 일부러 방방 뛰거나 기분이 몹시 좋은 것처럼 행동했는데 어느 날은 언니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가 그렇게 신나?'라고 물었다.
스물 중반, 부모님의 사이가 회복되지 않을 것처럼 나빠지고,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전보다 생각할 것들과 걱정거리가 많아지면서 집 안에서의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했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지고 때에 따라 예민해지는 날이 있으면 더욱 혼자 있는 것이 편해졌다. 어머니나 언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이상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고,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말이 부담이 되고 오히려 걱정을 더했다. 그런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가족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원하는 위로를 받지 못할 때면 받게 되는 상처가 많아져서 '내가 뭘 기대했을까.'라며 스스로를 추슬렀다.
가족들에게 원하는 위로를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기대를 줄여나가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그런 나의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 예전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전처럼 받아줄 수 없었다. 나는 받지 못하면서 줄 수 있는 대인배는 아니었으니까. 그럴수록 나의 말 모양새가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내가 한 말을 깊게 생각하며 자책하는 날도 생겼다. 스스로 아닌 행동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에서 제어가 되지 않고 나오는 말들은 충분히 누군가와 다툼이 되거나,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더욱 입을 닫게 되었다. 정말 필요한 말만 하거나 대답만 간단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가족들과의 어느 정도의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더는 가족에게 상처를 받기도 싫었고, 주기도 싫었다. 사랑만 하기에도 우리의 시간은 짧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