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고생했어'라는 말이 좋더라.
내 하루의 고단함을
내 몇 달의 아픔을
내 몇 년의 슬픔을
다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상대방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조금 더 해보지'라고 행동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누구나 고생하며 살아간다고 우는 소리하지 말라며 당연히 고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식의 말도 싫어한다. 학생이 학생의 본분을 하고, 성인이 성인이 되었으니 해야 하는 것이 모두에게 당연하게 되면 우리는 아마 살아가는 것이 너무 고되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로는 짧게나마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래, 오늘도 고생 많았어.'라고 말해주면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이 말을 듣고 싶어 했다. 나의 모든 행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나의 행동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날들은 많았으나 내가 제일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은 나의 슬픔이었다. 몇 년 전 내가 나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소설책을 어머니가 보고 했던 반응이 사실 나는 잊히지 않아서 때때로 내 책을 생각할 때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곤 한다. 내용 중에 또래와는 다른 외적 이미지에 신경이 쓰였지만 어머니의 말을 잘 따르는 딸이 되고 싶어 더욱 조르지 않았다는 부분이 있는데 어머니는 그 부분을 보시고는 '엄마도 해주고 싶지만 상황이 안 됐지'라는 말씀을 내어놓으셨다. 내가 좋은 딸이 되기 위해, 어머니의 걱정의 한 부분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 시절 내가 어머니를 위해 했던 나의 행동들이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어쩔 수 없었거나 딸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여겨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아버지와의 일로 내게 하소연을 하는 어머니에게 그만하라고 하거나 바쁜 생활로 시골에 있는 어머니를 챙기지 못했을 때 어머니에게 '바빠서 못했다'라는 말에 서운해하시면서 가족에게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하느냐라는 말을 들었으니 이 전에 내가 했던 어머니를 향한 좋은 뜻의 행동은 어머니에게는 당연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살아있으니 살아간다는 말을 생각하며 지내다 보면 나의 행동도 다른 사람의 행동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때가 온다. 각자의 위치에서 해주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분명한 역할에도 '수고했다', '고맙다'라는 말을 건네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들이 내 옆에서 함께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나는 요즘 나의 사람들에게 하염없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