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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Oct 11. 2023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ADHD?

 

 안정제를 처방받은 날 내 약의 변화가 또 생겼다. 처음 보는 약이 하나 추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약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쉽게 말해서 요즘 전보다 알려지고 있는 ADHD의 치료제로 쓰이는 약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한테 ADHD 증상이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약을 잘못 준 것은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럴 일이 없다고 금방 다시 생각했다. 필요하다고 느끼셨을 테니 주셨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변화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을 먹고 첫 주말을 혼자 보내게 되었다.      

 

 쉬어도 없어지지 않는 피로감은 나의 우울함과 함께 공존했다. 주말을 쉬지 못하고 일 한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서도 있겠지만 주말 근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아무래도 정신적인 피로감이 신체적인 피로감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니 친구가 면역세포 검사를 권유해 줬다.

그래서 그날은 그 검사를 하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면역세포 외에 피로와 관련되어 있는 다른 검사들까지 함께 진행했다. 간단하게 피를 뽑고 끝나는 검사라서 끝난 후에 근처에 있는 서울식물원으로 산책을 갔다. 산책을 하면서 나무들과 꽃을 보고 흙바닥을 걷고 호수 주위를 돌면서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머릿속에 복잡하게 있던 생각이 정리가 되어서 글로 만들어지고, 걷다가 빈 벤치에 앉아 그냥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멍하니 흐르는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 전만 해도 멍하니 앉아있으면 온갖 잡생각이 들어서 더욱 가라앉고는 했는데 그날은 정말 말 그대로 멍하니 호수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게 또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렇게 식물원에서 시간을 한참 보내고 다른 산책길로 나섰다. 그 다른 산책길로 가는 중에 나는 내가 아닌 모습을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기분이 좋았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다른 산책길, 평소 좋아하는 길을 걷기 전에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서점으로 들어갔다. 책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도 그저 구경하고, 종이 냄새가 가득해서 내가 편안해지는 장소 중 한 군데다.

그날은 에세이, 소설 등 장르별로 구경을 하고 심리학 장르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저 궁금해졌다, 평소 심리학에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나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욱 관심이 끌렸고, 책 제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눈에 띄어서 한참을 제목만 보다가 책장에서 책을 꺼내서 천천히 목차를 보기 시작했다.

우울증과 번아웃에 관련된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책의 앞 내용을 읽다 보니 뒤에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조금은 나아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큰 고민 안 하고, 더욱 사실적으로 말하면 충동적으로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서점을 나와 산책을 가려는데 걷기에는 많은 양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가 오는 것이 싫지 않았다. 계획을 바꿔서 근처 알고 있는 카페로 가서 자리를 잡고, 구매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책에 그렇게 빠져든 게 얼마만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데, 책이 술술 읽혔다. 예전에는 책을 읽어도 한 문장을 2-3번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날은 쉽게, 쉽게 책이 읽혔다. 그러니 다시 기분이 한 단계 올라갔다. 바뀐 약을 먹고 자주 깼던 것이 좋아지고, 잡생각이 없어져서 집중이 잘되는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무언가 오랜만에 완벽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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