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정의 달 보내기

3부.농촌에서 자라는 아이들

by 스라서니

첫째와 둘째 아이 모두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학교를 다녔기에 , 학교 운동회는 더 이상 온 학교가 함께 모여 즐기는 축제가 아니었습니다.

첫째가 다녔던 서울의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와 학예회가 번갈아 열리는 연례행사였고, 수많은 아이들 속 우리 아이 찾느라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두리번거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도 모두 함께 웃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 아이 반이 지나갈 때면 텐션을 높여 격하게 손을 흔들던 그 순간들은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코로나가 앗아가, 영상으로만 보게 되었고 흥은 각자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로나가 서서히 끝나가던 2022년,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첫 운동회를 치렀다.


왕곡에서 처음 열리는 운동회 소식은 무척 설렜습니다. 어린이날 직전,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시기에 열리는 행사였고, 첫째의 설레는 당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 일찍 와서 맨 앞자리에 앉아야돼!”


몇 번을 신신당부하던 아이의 말이 생각나, 일찍 서둘렀습니다. 학교와 우리의 집과는 차로 3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는 설레는 마음에 운전대를 곧장 잡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너무 일찍 학교에 도착해버렸습니다. 왕곡초 아이들을 태운 스쿨버스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조급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날은 마침 간간한 비 예보도 있었기에, 운동장에서 치러져야 할 운동회를 상상하며 체육관 앞에서 잠시 운동장을 바라보았습니다.


20230504_084718.jpg 어둑한 하늘 아래에도 운동장이 예쁘다.


푸르른 잔디와 회색의 구름, 잔뜩 물기를 머금은 공기, 고요한 바람.

화창한 날만이 아닌, 서서히 그을려진 하늘 아래의 학교 운동장은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맑은 날 운동장에서 열리는 운동회가 아쉽긴 했지만, 흐린 날씨 덕분에 체육관에서 전교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인사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졌습니다.


체육관에 들어서자, 선생님들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시며 학부모 좌석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 자리는 다름 아닌, 무대 위!

20230504_083713.jpg 짜잔! 무대 위 학부모 좌석!

앞자리를 맡겠노라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저의 투지는 무색하게도, 무대 위 좌석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학부모 좌석은 몇 줄뿐이었기에, 제시간에 도착했더라도 앞자리를 사수할 필요는 없었겠다는 사실이 민망함을 더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운동회 관람 시야는 충분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으니까요.


그래도 첫째의 당부가 떠올라 맨 앞줄 중앙에 앉아 보았지만, 정중앙에 앉아있으려니 부담스러워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보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이의 바람을 지켜주려 다시 중앙에 앉았지만, 무대 위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는 그 순간은 마치 귀빈처럼 대접받는 듯한 어색함에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운동회 개막시간이 다가오자 학부모님들도 하나둘 도착하셨고, 아이들도 줄을 지어 체육관으로 들어왔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저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열을 맞추어 줄을 서는 모습을 보면서, 학부모 좌석이 왜 무대 위에 마련되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활기찬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시야에 다 들어오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눈에 전교생을 다 볼 수 있다니! 게다가 네 살 터울 남매인 우리 아이들의 설레는 첫 공동 운동회라니!

이런 생각이 밀려오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 깊이 차올랐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개회 말씀에 이어, 유치원을 포함한 전교생이 45명이 함께하는 '한마음 운동회'의 막이 올랐습니다. 적은 인원인 만큼, 전교생이 청팀과 백팀으로 팀을 나뉘어 게임을 진행했고, 전문 MC의 재치 있는 진행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흥이 났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질서와 응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따뜻한 운동회가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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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첫째 아이의 백팀. 작전회의 중? (오) 청팀으로 앞에서 두번째에서 힘주는 둘째 아이의 가녀린 사투
다른 팀이었던 첫째와 둘째 , 성격이 드러난다.

릴레이 달리기 게임에서는 아이들이 작전 회의를 하듯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림보경기에서는 각기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줄을 통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습니다.

줄지어 있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미는 아이, 무대를 바라보며 엄마를 찾는 아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꼿꼿이 서 있는 아이까지- 다양한 표정과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학부모만 언제까지나 점잖게 위에서 지켜볼 수는 없지요. 곧 학부모들도 단상 아래로 내려와 아이들과 함께 게임에 참여하며 점점 그 분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흥분된 에너지와 환호가 고스란히 전해져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

학부모들만 훌라우프 게임 등 학부모 단독 게임도 많았던 덕분에 처음 뵌 분들과 몸으로 먼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아이들의 응원 열기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왕곡초의 또 다른 볼거리는 병설 유치원 친구들의 귀여운 모습이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 차례가 되면 다른 학부모님들도 더 큰 환호를 보내셨고, 그 모습을 보며 유치원 아이들을 통해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이 내 아이처럼 느껴지는 마음은, 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청팀과 백팀으로 나뉜 아이들은 게임마다 점수를 쌓아가며 승리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친구, 형, 동생을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넘어지면 안타까워하며 손을 내미는 모습은 경쟁자이면서도 한 가족 같은 따뜻한 풍경이었습니다. 체육관 안의 모두가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까마득한 동생인 1학년 친구들과 유치원생들을 격려하고 쓰다듬어주는 첫째 아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동생들을 안아주며 예뻐하는 모습에 괜히 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첫째의 활짝 웃는 얼굴을, 그날 하루 동안 마음껏 볼 수 있었습니다.


작은 시골학교에서 그래도 '큰 언니'가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아이들을 챙기며 여유 있게 경기를 즐기는 첫째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둘째는 청백의 경쟁 속에서 경기 하나하나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쉬는 시간에도 자신의 팀 점수를 계산하던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웃음이 나던지요.


운동회 말미, 아쉽게도 둘째의 청팀이 우승을 거두지 못했지만 청팀과 백팀 모두 어린이날 선물을 받았습니다. 승패엔 관심없다며 쿨하게 재밌었다고 웃던 우승한 백팀의 첫째와, 우승을 놓친 아쉬움에 눈물을 찔끔 보인 둘째. 하지만 곧 선물상자를 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연휴 내내 먹을 수 있는 간식상자였거든요.

둘째의 작은 마음속에 품었던 큰 열정이 어린이날 선물로 위로받을 수 있었던 왕곡초 운동회가 참 고마웠습니다.


아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도, 직접 참여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작은 시골 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이곳에 제가 서 있는 이유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학교의 운동회는 아이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가정의 달에 우리 모두가 함께 웃고 응원했던 따뜻하고 활기찬 모두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아이들보다 더 설렜던 제 마음속에도 오래도록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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