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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Jan 28. 2023

인정받기 위함이 아닌 존중받기
위해서 일하다

한국 직장 vs 호주 직장

Work not to impress but to be respected


오늘도 회의가 많은 날이다. 새로 들어온 프로젝트 팀원들을 모아놓고, 프로젝트에 관한 교육을 시킨 후, 팀장급 회의에 들어가 두 시간을 토론하고 나오니, 몸이 설탕을 찾기 시작한다. 대부분 몇십억 이상씩 되는 메가급 프로젝트에서 2, 30년 이상을 일한 베테랑들이다 보니, 그들의 전문성과 대화 수준은 다들 박사 수준급이다. 그러니 원어민이 아닌, 나 같은 이민자가 그들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선, 보통 200%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내 두뇌는 그렇게 매일매일 혹사를 당하곤 한다. 그렇게 15년을 열심히 일하고 나니 , 나의 생존 에너지가 다 고갈된 것 같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 없는 나를 10년 이상 이곳에 붙잡아 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정서적으로 많이 다른 환경에서....

 

지금의 한국은 많이 변했으리라 믿지만, 20년 전 경험했던 한국의 기업 문화는, 참으로 이해가지 않던 부분들이 많았다. 직원의 채용과 승진과정에서 실제적인 경험이나 능력보다, 학벌과 학연에 치우쳐,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던 부분. 상사의 눈치를 보며, 새벽까지도 퇴근하지 못하던 직원들. 그 권위주의와 비효율성. 학교에서 길러진 심한 경쟁심으로 ‘팀워크’을 떠올릴 수 없었던 이기적인 조직 문화. 한국의 일류대와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유능한 엘리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뛰어난 지식에 비해, 한없이 초라해 보이던 그들의 인격. 


호주의 직장은 경험, 검증 그리고 정직을 기반으로 한다. 고용에 있어서 경험의 비중이 아주 크고, 그 경험을 기반으로 실제적으로 업무수행이 가능한지,  반드시 검증의 단계를 거치며, 이 모든 과정에서 그 사람의 정직한 대화와 투명한 일처리를 중요시한다.  이러한 가치는, 단순한 이론과 이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조직의 판단 기준이고, 직장을 주도하는 문화이다.  그래서인지 인사평가에서도  큰 “변수”가 존재하지 않고, 나의 능력과 노력은 외부의 영향 없이 대부분 정직하게 보상받는 편이다. 검증이라는 건, 대단한 업적과 실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주어진 시간 동안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다. 일에 대한 진행 사항이나 문제점들을 , 항상 상사와 팀원들과 상의한다. 물론 악의 없는 나의 실수에 대해서도. 그럴 때 그 누구도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운 것들을, 함께 팀원들과 나누며, 향상의 기회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호주의 조직문화는, 한국에 비해 큰 긴장감이나 경쟁심이 없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일하기보다는, 그저 본인의 삶의 한 영역의 확장으로서, 균형 있게 일하는 편이다. 절대적으로 일을 삶의 우선으로 두지 않는다. 가정과 건강, 안전은 양보되어질 수 없는 가치이며, 일보다 늘 우선순위를 둔다. 그러다 보니 동료와의 관계 또한 대부분 편안하게 유지하는 편이다.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로. 한국인은 정서적으로 좁고 깊은 친밀한 관계를 선호하는데 비해, 호주인들은 얕고 넓은 편안한 관계를 선호하는 듯하다. 


호주에서 첫 회의에 들어가 놀랐다. 계급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농담을 하며 회의를 진행하는 것에. 물론 때로 다른 의견에 긴장감이 돌 때나 있으나, 회의실을 나올 땐 모두 웃는 얼굴로 나온다. 물론 이런 그들의 정서가,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땐 지나치게 캐주얼하게 보일 때도 있으며, 생산성면에서 우리 한국의 조직이 가지고 있는 집중력과 심도 있는 접근 방식이 참으로 그리울 때도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집단 왕따 혹은 과로사와 같은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일을 할 땐, 조직에서 암묵적인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정중하게 상대방을 존중하며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시간이 걸렸다. 또한 배려심이 강한 한국의 정서상,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염려에, 직선적인 의견이나 반대의견을 피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감추고 삭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적으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아주 건설적이지가 못한 태도이다.

 

나는 그동안 성실과 헌신으로 일구어온 우리 한국의 기업문화가,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산성과 효율성면에선, 우리나라 기업들과 인력은 세계에서도 아주 압도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좋은 인력 유치를 위해선, 실질적이고 유연성 있는 지원이 아주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넓은 세계관과 다양한 경험을 소유한 인재들을 많이 채용해서, 조직 내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세계적인 기업들은, 다양성과 포용의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과학적이고 실질적인 많은 투자를 한다. 조직의 다양성이, 일의 혁신성과 생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증명된 부분이다.

 

어느 조직이든 완벽한 곳은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극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면 그건 용납되어선 안된다. 

 

스스로에게 말하라. 나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그리고 나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조직에 주저 없이 No라고 말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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