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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Jan 29. 2023

친절함이 아닌 지혜의 부족

바운더리

It’s not about being kind but about lack of wisdom


여름 내내 가물었던 땅은, 어느새 가을비를 향해 입을 벌려 쏟아지는 빗방울을 마셔댄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오랫동안의 굶주림은 절실함으로 몰아가곤 한다. 


살다 보면 결핍에 의해 형성된 관계들을 보게 된다. 이 결핍은 아주 강렬한 욕구로 작용하기에, 사랑과 관심이란 이름으로 가장해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어떠한 인연은 우리의 내면에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나곤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절제가 필요하다. 

 

이민 초창기, 참으로 뜻하지 않은 우여곡절을 종종 경험하곤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였했던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이, 몇몇의 현지인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매력으로 다가왔었나 부다. 철저한 개인주의 속에서 정이라는 문화가 없는 그들에게 “친절함”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리고 내면의 결핍이 많은 외로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리했다. 사실 이것은 국경을 떠나 모든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슬픈 현실이기도 하지만.....

 

호주 사람들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아주 쿨하게 작용할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과 정신력은, 한국 사람들보다 더 여린 부분들이 많이 있다. 지독한 개인주의 속에서, 속으로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연인과 헤어지고 자살하는 일들이 많이 있고, 어린 나이에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베푸는 친절에 대해 우리는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인연 속에서, 우리의 마음과 권리가 침해당하거나, 상대방에게 원치 않는 상처를 주고 마는 불필요한 일을 당할 수가 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완전하고 결핍 투성이인 우리들을 보호할 수 있는 건, 건강한 바운더리 일지 모르겠다. 문요한 작가가 말했듯, 그것은 단절되거나 폐쇄적인 것이 아닌, 열려있는 통로로서, 나의 마음을 보호하되 타인들과 편안하게 교류할 수 있는 그러한 건강한 바운더리인 것이다.

 

지나친 관계 중심의 한국 문화와, 다소 분리된 서양의 개인주의 사이에서, 우리에겐 섬세한 균형이 필요한 것 같다. 


"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해펴서는 안 된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들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 법정 스님의 "인연"에 관한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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