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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Jan 22. 2023

손키스

   서른이 넘었어도 야한 이야기를 하는 건 왜인지 창피하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유일하게 19금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율이 있다. 그건 아마 율의 (응큼이 아닌) 음흉 세포가 아주 커다랗기 때문에 무얼 들어도 19금 필터를 거쳐 기승전야한 이야기로 빠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 실은 그런 이야기가 재밌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은 율이 키스에 꽂힌 날이었다.

   율은 항상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한다. 춘천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ITX 열차 시간을 착각해서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했을 때도 율은 약속 장소에 나와 있었다. 언제 왔냐고, 미리 와서 뭘 하냐 물었더니 책을 읽거나 소설을 쓴다고 했다. 율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하루 중 몰입도가 가장 좋다고 했다. 쓴 글을 잘 보여주지 않는 나에 반해 율은 보여달라고 하는 족족 보여줬다. 오래된 책을 건네는 것처럼. 나와는 달리 좋은 말을 듣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어둑한 가게에 들어서자 달짝지근한 튀김 냄새가 흘러나왔다. 율은 오늘도 미리 도착해서 바지락 술찜에 청하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술병은 절반이 조금 넘게 비워진 상태였다. 목도리를 벗으며 앞자리에 앉자 율이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

   “나는 키스보다 뽀뽀가 좋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식당 안은 적당히 시끄럽고 사림들은 적당히 취해 있었다. 아무도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얼굴과 손에 문지르며 물었다.

   “왜? 의외네.”
   “어렸을 땐 무조건 키스였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키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더라고.”
   “왜?”
   “혀보다 입술이 더 잘 느껴져. 상대의 입술이든 피부든 뭐든.”

   우리는 최악이었던 키스의 기억을 나누며 한참을 웃었다. 최악의 사건은 사람의 몸이나 마음을 허약하게 만들 때가 많지만, 잘 이겨낼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나눌 수 있는 기억이 된다.

   율과 대화할 때면 내게 양감이 생기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평소라면 꺼내지 않았을 이야기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율을 만나면 했다. 마음이 정원이라면 소심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 나의 마음에는 조그맣고 잔잔한 실 같은 꽃들이 잡초와 섞여 낮게 피어있을 거였다. 율을 만나면 얼굴이 크고 화려한 꽃을 잔뜩 옮겨 심은 기분이 들었다. 그 느낌은 금세 사라지곤 했지만, 율을 만날 때마다 내가 알고 있던 나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두 번 다시 볼 일 없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에만 느끼던 감각이었다. 율을 만나는 시간에는 꺼내려다 만 말은 없었다. 많은 말을 내뱉었을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후회도 없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타인을 만나며 나는 내가 되어가는지도 몰랐다.

   “왜 키스는 입을 맞대고 혀를 이렇게, 이렇게, 할까? 코나 볼, 귀를 맞대는 건 왜 에로틱하지 않을까?”

   율의 청하를 한 모금 빼앗아 마시며 물었다.

   “혀가 제일 부드럽고 따뜻하잖아.”
   “일리 있다.”
   “그리고 체액을 나누잖아. 정액처럼!”
   “야.”

   율은 짓궂게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얼른 주변을 둘러보며 나무랐다. 내 반응을 예상해서 일부러 정액이라는 단어를 꺼낸 거였다. 율은 잔뜩 움츠러드는 나를 보며 웃고, 나는 그런 율을 보며 웃었다.

   “나는 손잡는 게 더 좋은 거 같아. 손 키스라는 게 있으면 좋겠어.”
   “어떻게 하는 건데?”

   남편의 손을 만지작거렸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냥, 뭐. 상대방 손바닥 안에서 내 손바닥을 굴리고, 두 손 사이에 그 사람 손을 끼워서 문지르고... 깍지 끼고 풀면서 손가락 마디를 느끼고... 손바닥, 손등, 손가락을 쉼 없이 만지는 거지.”
   “그거... 섹스 같은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야하게 상상한 게 분명했다. 나의 ‘굴리고 문지름’과 율의 ‘굴리고 문지름’은 모양이 다를 것이다. 그 다름에서 나만이, 혹은 율만이 쓸 수 있는 흥미로운 글이 태어나곤 했다. 사람 간의 완벽히 소통 불가능한 어떤 부분은 개인에게 고유함과 특유함을 부여한다. 사람 간의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다름을 튕겨내거나 적시하지 않을 수 있기에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친구로 남아주는 게 아닐까. 소심하고 촌스러운 나를 친구 삼아준 율처럼.

   “오늘 해본다. 손 섹스.”

   내 맥주를 빼앗아 마시며 율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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