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얗게 김 서린 창문을 열었다. 후덥지근한 열기 사이로 청량한 찬 기운이 번졌다. 강원도는 눈 녹는 속도가 느렸다. 눈이 한 번 내리면 온 동네가 두꺼운 눈에 오랫동안 덮여 있곤 했다. 눈도 바다처럼 하늘빛을 흡수한다는 걸 겨우내 눈 쌓인 밭을 보고 알았다. 눈은 아침과 이른 저녁에 연한 살굿빛을 띠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는 서늘한 푸른빛이 돈다. 해가 지면 청명했던 푸른빛은 사라지고 먹빛으로 차오른다. 나는 매일 눈이 서서히 거먹빛으로 변하는 어스름한 저녁에 요리를 시작했다. 작은 냄비 안에서 물 끓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멸치와 다시다, 다진 마늘이 아늘아늘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공기 중에서는 익은 채소의 단내가 났다. 겨울은 요리하기 좋은 계절이었다. 마음 풀고 창문을 활짝 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다른 계절에는 창틈으로 작고 큰 벌레가 수시로 찾아들었다. 괜히 빈 벽에 툭툭 몸을 부딪치기도 하고, 밝은 조명 아래 구순히 모여 있기도 했다. 밤벌레들이 소란스러운 여름엔 최소한의 불만 켜두고 어둠 속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재료를 잔뜩 꺼내 늘어놓으면 문득 마음이 달뜬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의 어수선한 주방 풍경에는 무심히 지나치기 아까운 섬세한 아름다움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기우뚱한 달걀 두 개의 비스듬한 각도, 신선한 두부에서 나는 콩의 풋내, 잘게 부서진 진주 같은 쌀알, 밀가루 반죽의 미색, 매끈한 파프리카의 표면, 바삭거리는 양파의 주황색 껍질, 당근에서 나는 흙내음, 무의 완만한 곡선. 시들기 일보 직전인 허름한 채소에도 녹음이 있다. 요리를 할수록 재료마다 다른 특유의 질감과 빛깔과 내음을, 공들여 만든 음식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푸근하게 부드럽고 알싸하고 새금하고 야무지고 실한 것들. 흔하고 값싼 식료의 다양함은 그 자체만으로 잘살고 싶어지는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달걀을 쥘 땐 달걀 껍데기의 강도만큼만 살아내면 될 것 같았다. 바나나를 깨어 물 땐 부드러움에 감탄하며 바나나 정도의 향긋함과 온화함을 지니고 살면 좋을 듯했다. 남몰래 품은 지나친 욕심은 마른 양파를 다듬으며 함께 껍질을 벗겨냈다. 콩을 씻으며 콩 한 알 정도의 영양과 결실을 얻는 간결한 삶을 상상했다.
손가락만으로 가볍게 부서지는 파프리카는 이 정도의 굳건함으로 우리 집까지 왔다. 나도 내가 가야 하는 곳까지만 가면 된다. 내가 필요한 곳까지. 가고자 하는 곳까지. 지금까지는 거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멀리 가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연약한 애호박은 비닐의, 두부는 플라스틱 용기의 도움을 받아 부드러운 채 세상 곳곳으로 퍼진다. 나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 하며 요리할 때마다 게으른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