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눈뜨자마자 샤워하는 즐거움으로 지내고 있다. 샤워는 잠들기 전에만 하는 거라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오전에 샤워할 생각을 못 했었다. 아침마다 겨우 세수만 하고 다니다가 퇴사 후 춘천에서 생활하며 알게 되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만족스러운 샤워를 위해 사오십 분 정도의 여유가 필요하다. 거품으로 몸을 닦기 전, 밤사이 생긴 갈증을 해소하듯 물을 한껏 맞는다. 걱정과 불안이 많은 내가 하루 중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다. 따뜻한 물을 뿜어내는 샤워기를 차가운 목덜미와 배에 오랫동안 대어주면 신체는 물처럼 부드러워진다. 쏟아지는 물은 피부를 두드리며 아직 졸고 있는 낙관을 깨운다. 따끈해진 몸을 따라 마음도 풀린다. 몇 시간이고 걷다가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울 때처럼 고요한 환희가 차오른다.
보드라운 타월에 거품을 내어 커다란 여인초 잎을 닦아내듯 몸을 닦는다. 샤워하다 보면 식물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해가 난 방향으로 몸을 뻗어내는 고요하고 필사적인 생활이 왜인지 이해되는 것이다. 볕과 바람과 물이 주어지는 만큼 살찌는, 멈춰있는 듯한 무언의 삶이 그려진다. 투명한 물을 맞으며 스스로 어떤 식물일지 생각했다. 아름다운 잎이 쉽게 타고 마는, 까다로운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일까. 줄기를 잘라 물에 꽂아두기만 해도 뿌리와 새 잎을 잘 내는 스킨답서스일까.
나를 보살펴야 하는 식물 중 하나로 대했을 때 많은 고민과 문제가 노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건 쉽고도 어렵다. 생각보다 별거 없어서 쉽고, 생각보다 본인을 몰라서 어렵기도 하다. 나는 천천히 샤워할 때 잠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직한 행복의 순간, 그 물방울을 향해 조금씩 몸을 뻗어나갈 때 생의 모양은 어떻게 변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