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사실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시간이 지나면 과정은 왜곡되고 결과는 뚜렷해지니, 특히나 기억을 미화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특화된 나는, 그때의 나를 그저 헤벌레- 웃으며 어제와 다르지 않게 살아갔던 이방인으로 구분했다.
사실 웃긴 일만 기억하는 게 정신 진화론적 (내가 생각한 이론이다. 정신도 유전적으로 진화한다고 가정한다면. 슬픈 일을 정제하고, 좋은 일들만 기억하며 살아남은 나의 조상. 그들은 즐거운 기억을 많이 가지는 것이 더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다 인식한다. 이러한 형질의 유전을 받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좋은 일들을 기억하려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특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는 자주 나지만, 지나가면 웃기다. 슬픔보단 기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전편의 글은 내 험난한, 개강 전 친구를 사귀겠다고 달려들다 그대로 고꾸라져버린, 교우관계의 시작에 대한 코믹한 기억이다. 글을 쓰며 10번은 넘게 소리를 질렀다. 제발 생각나지 마라, 생각나지 마라. 부끄러운 기억은 왜 퇴화가 안될까. 이렇게 웃겨질 이야기여서일까. 이제껏의 나의 글들은 그랬다. 내 기억을 바탕으로 적히니.. 그래도 이번은, 모처럼 일기를 발견한 기념으로, 사실에 더 가까워져 보려 한다. 아래는 그날들을 기록한 일기의 한 부분이다.
어제, 두 번째 ESN 학생모임에 나갔다. 원래는 동네를 걷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비가 오는 관계로 건물 안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걸로 바꿨다. 시작 전 건물 중앙 공간에서 둥글게 앉아 이름도 서로 물어보고 팀도 나누며 게임했는데도 친구로 발전할 만큼 가까워진 애가 없었다. 말을 계속 걸어주는 올리비아와 어떤 독일 남자 애가 있었는데(심지어 그 여자애랑은 밥도 먹었는데.!), 그저 그런 가벼운 말들만... 하였다... .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 그냥 서로를 탐색만 하는 상황에서 봐서, 동양인이라서?,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니 그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 생각해서, 내가 웃기지 않아서. 모든 게 다 이유가 되고 모든 게 다 나라는 존재가 이방인 같아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우울했지만 길게 가도록 하진 않겠다. 또 도전할 것이고 내 옆엔 민이 있었으니깐. 조금 막막하긴 하지만... 오늘 든든하게 흰쌀밥에 고기 먹고! 저녁에 더 적극적으로! 한번 해보자!!
아니. 아니었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민과 둘이 다녀서, 서로 의지하느라고, 더 어려운 줄 알았다. 아니었다. 민이 없는 만큼 두배로 더 친구를 찾으러 애써야 했고,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게 긴장해야 했다. 난 먼저 말을 걸지도 못하며 농담을 받아칠 수도 없다.
3분 인간처럼 3분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도 못한다.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뭘 해야 하는가. 트램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그냥 걸었다.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친구를 사귀면 영어가 느는 게 아니었다. 영어가 돼야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것이다.
아마 개강 전에 친구들을 사귀지 않으면 힘들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에 엄청나게 힘이 들어갔었을 것이다. 첫날도 둘째 날도 통성명에서 더 나아간 친구가 없어서 많이 불안했다. 언제든 친구를 사귀고 하하 호호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향인인 나도 외국에 나가서는 사교적인 사람으로 변할 거라는 오만이 있었다. 이제 겨우 적응해 온 내 성격인데, 달라진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웠겠지. 그것을 생각 못하고 편견을 만들어냈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중에 나만 동양인이니. 나랑 민만 동양인이니. 그런 편협한 생각에 발을 맞추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기를 읽으니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어색하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즐겁게 편집된다는 것은 좋다. 다만, 그렇게 못난 생각들을 했던 자신을 인지하고 변화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반성이자 다짐을 위한 한 꼭지다. 우울할 때만 일기를 쓰는 것 같아 그만두었는데, 나에겐 필요할 것 같다. 되짚어 보고, 손으로 적으며 기억 속에 조금 오래 머물길 바라며. 그런 의미로 내일은 멋진 일기장을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