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배우기에 유럽이 제격인 이유(2) 땡큐 러스!

by 지수


Hi, Do you know what does it means?

안녕, 너 이게 무슨 뜻인지 아니?


그 애는 내가 이 한 마디를 얼마나 용기 내어 건넨 것인지 모를 것이다. 엉덩이를 들썩이다 "바이"인지 "씨유 넥스트 타임"인지 아무튼간에 나의 세 번째 수업의 교수님이 오리엔테이션을 마치는 말을 하자마자 가방을 집어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저 한국어를 모른척할 한국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응, 나 이거 읽을 수 있어. 나는 물고기입니다.

와! 놀랍다.

중국 유학 갔었는데, 한국 친구들도 있었어. 그 친구들이 선물해 준 거야.

정말? 나 사진 찍어도 돼?

그래.


아쉽지만 러스와의 첫 만남에 한 대화는 이게 다였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도 질문에 힘을 쏟아서인지 다른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다음이 있으니까. 그렇게 쿨한 척 인사를 하고 매고 강의실을 나왔다. 입술이 씰룩씰룩거렸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는 뿌듯함. 민에게 어서 가서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다고.


_



_


답답하게도, 몇 번의 강의를 들었지만 그와의 관계에 진전은 없었다. 눈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자리란 게 처음 앉은 곳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 옆 친구들과 토론 타임들이 주어졌지만 나는 자꾸만 버벅거렸고, 그 친구들은 뭔가 어정쩡한 미소에 어색한 눈빛을 보냈다. 뭘 알아야 농담도 하지.. 그러나. 드디어 온 것이다. 대이동의 날이! 학기 말에 있을 발표를 같이 할 팀이 필요했다. 러스를 보았고 고맙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으로 오라는 시늉을 했다. 바이~. 잘 있어라 이 아가씨들아. 너네 나 안 끼우려는 거 다 보여.


가방을 들어 러스 옆에 내려놨다. 그리고 환영해 주는 아미나의 손을 잡았다. 아미나, 러스, 그리고 나. 그들은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100% 이해했다. 아니, 솔직히 러스만 이해한 것 같았다. 교수님이 토론을 시작하라고 하면 러스는 앙큼하게도 나에게 먼저 물었다.

지슈, 너 이해했니?


그 질문에 빠짐없이 아미나는 웃으며 러스에게 무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좋다. 저 착한 아미나를 멈추고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보기 좋은 미소로 말했다.

응, 나 이해했어. 그런데 'introvert'가 무슨 뜻이야?

질문의 핵심 단어였다. 결국, 모르면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는 단어를 묻는 것이다. 그러면 러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이 대하듯 나에게 설명해 준다. 기꺼이 아미나는 기다려 준다. 아미나의 대답을 듣고, 러스의 대답을 들으면 타임이 종료될 때도 있었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래도 대화를 못 하게 됐으니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러스의 무례함이라 표현되는 것들은 하나도 밉지가 않다. 수업이 끝난 후 셋이서 파스타를 먹으러 간 날이었다. 무슨 영화 얘기로 시작되었는데, 그러다 그는 본인이 본 가장 섹슈얼적인 영화를 공유했다. 분명 음담패설이었는데 나는 뉘앙스만 알아들어 민망함 또는 담담함 그 어떤 것도 표현할 수 없었다. 잠자코 듣고만 있는 내게 러스가 물었다.

지슈, 너 OOOOOO이 무슨 뜻인지 알아?

아니, 몰라.

그런데 너 왜 모르는 걸 안 물어봐?


그건 분명 성적인 어떤 단어였다. 뉘앙스가 그랬다. 아니 그런데 이걸 내가 말을 끊고 물어보라고? 진심인가? 당황스러웠지만 알겠다고 했다. 이제는 모두 묻겠다고. 그날 엄마와 전화를 하다가 말했다.

엄마, 내가 러스랑 아미나랑 얘기를 하고 있었거든? 나는 그냥 들으면서 걸었어. 그런데 러스가 갑자기 나보고 왜 이해가 안 되는데 질문을 안 하냐고 하더라?

어머, 착하네. 그렇게 배려해 주는 친구가 어딨니. 더 친해져 봐.

무슨 얘기를 했는지만 모르면 참 맞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뻔히 모르는 것 같은데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내 수준으로 말을 해달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당당하게 끼어들기로 했다. 잠깐, 잠깐. 그게 무슨 뜻이라고? 하면 열의 열 친구가 멈춰서 얘기해 줬다. 왜 안 물어봤지 싶었다. 그렇다고 매번 다 물어보긴 그렇지만 할 말이 없을 땐 역질문으로 추천할만하다.


_

KakaoTalk_20250909_195951517.jpg

_


러스가 친구의 과제를 도와달라 부탁했다. 아미나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면 그걸 릴스로 만드는 것이었다. 무슨 책을 어떻게 소개하지. 그래도 일단 알겠다고 했다. 아미나와 나는 날짜를 잡았고 그날 난 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대본을 적어 갔다. 트램을 타고 장소에 가는 내내 중얼거리며 외웠지만 헛수고였다. 두 번만에 끝내 여유로운 아미나와는 다르게 나는 자꾸만 끊겼다. 러스의 친구는 편집을 하면 되니 얼마든지 천천히 말해도 된다고 하였다. 노노노. 이러면 안 돼. 부끄러워 웃음이 났다. 카메라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며 촬영이 끝났다. 앞에서 아미나가 내 대본을 입모양으로 따라 읽어 주고 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아미나는 곧바로 수업이 있어 헤어졌다. 계단을 내려가며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괜찮다고 하며 러스를 얘기했다.

러스도 문법은 틀려.

러스가? 내 귀에는 정말 유창해 보였어.

아니야, 우리 모두 틀리면서 하는 거야.

내 눈에 고고하게 말을 하는 러스도 완벽하지 않다니. 그때 또 한 번 벽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러스도 그냥 하는 거였구나. 그런데도 그냥 다 얘기가 되는구나. 실수를 하지 않으려 했던 게 실수였다. 평가받으려 간 것이 아님을 되새겼다. 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지자!


그의 당당함이 멋졌고 무례함이 재밌었다. 사실 아미나가 so rude! so mean!이라 하지만 나에겐 하나도 무례하지 않았다. 그의 사적인 침범이 나는 너무나도 반가웠고 즐거웠다. 학교의 가십거리. 남자 얘기. 여자 얘기. 동양인의 특징. 서양인의 특징. 그 선을 넘는 농담들이 좋았고 개의치 않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그 덕분에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 땡큐 러스!












keyword
이전 04화영어를 배우기에 유럽이 제격인 이유(1) 플랫 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