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배우기에 유럽이 제격인 이유(1) 플랫 메이트

by 지수

탕!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대문이 열렸다. 캐리어 끄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 중앙 정원에서부터 들고 간다는 건 여행을 마치고 온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매너였다. 드륵드륵 캐리어를 끌다 백팩을 앞으로 돌려 손을 넣었다.

열쇠 네가 가지고 있나?

아 맞아 잠시만.

집안 불이 켜져 있었다.

왔나 본데? 어떡해!

연다?

눈을 마주치며 숨죽여 웃었다.


밝은 적막이 가득 차 있었다. 복도 테이블엔 긴 살라미(햄)와 축구화 주머니가 올려져 있었다. 방문들은 모두 닫혀있었다. 들어왔다 나갔나? 방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었다. 민이 집 문을 잠그는 동안 방문을 열었다. 홈메이트인지 플랫메이트인지 나는 그게 참 설레면서도 불안했다.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에 민뿐 아니라 혼성의 외국인들과 함께라니..



똑똑똑.

그들이 우리의 문을 두드린 건 우리가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넌 다음, 아껴먹자 약속했던 불닭을 남은 와인과 함께 먹어치운 뒤였다. 당연히 집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었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다 먹은 불닭접시는 내일 아침에 나가서 설거지하자고 결정한 것이었다.


내가 그 방문을 열었다면 그대로 닫았을 것이다. 너무 많은 눈들이 있었다. 발그레한 볼로 인사하는 뽀글 머리 줄리아, 수줍음과 장난기가 섞인 눈빛으로 민과 나를 보는 알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서로 얘기하는 마리아 네스토르. 줄리아의 이사를 돕기 위해 온 줄리아의 아빠가 대체로 말을 건넸다.


모두 바르셀로나에서 왔지만 서로는 모르는 사이라는 것. 공항에서 우연히 대화를 하다 같은 상황, 같은 집에 산다고 알게 된 것. 거기에 소소한 위기도 같이 겪어, 훗날 원수 같은 사이가 되겠지만 지금은, 더 친해지게 된 것. 모두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 스페인 사람들은 식사시간이 늦다는 것. 그 모든 말에 오~ 예쓰예쓰! 오케이로만 대답하면서 표정은 누구보다 다양하고 친절하게 지었다. 미리 밝히건대, 헝가리에 있는 내내 나는 그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건 참 힘든 동시에 잘한 점이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모두와 악수를 하고서 방문을 닫았다.

방 안이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었다.


헝가리 안에,

스페인 안에,

한국이 살았다.



사는 동안에 줄리아와 알바가 자주 문을 두드려주었고 우리는 문을 열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더듬더듬 영어를 했다. 우리의 이름을 바꿔 부르고는 음.. 하며 다음 말을 생각했다. 나에게 민이 있듯 민에게 내가 있듯 줄리아와 알바가 딱 그랬다. 우리에게 말을 하다가도 서로에게 서로의 말로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았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기다렸고 그들도 기다려주었다. 내 스페인어 지식은 그들이 가끔 영어를 스페인 발음으로 말할 때 유용했다. 부스는 버스, 레스타우란테는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대체로 그냥 내뱉었다. 조금이라도 이해한 것 같으면, yeah! right! 하며 용기를 주었다. 웃기게도 그들은 내가 정확히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다가 포기도 하였다. 나도 술을 마실 땐 그들에게 자비가 없었다. 끝까지 설득했고 어필했고 내 주장을 펼쳤다. like과 you know가 내 문장의 반을 잡아먹었지만 문장을 끝내는 것에 집중했다. 학교 친구와 대화를 하다 괜찮은 영어 문장이 있으면 집에 와 그들에게 써먹었다. 깡이 늘었다.


이번 글은 내가 이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를 얘기하기 위한 초석이기도 하지만, 내 영어가 늘었던 첫 번째 이유가 틀림없다. 잉글리시 노! 이든 노 잉글리시! 이든 우리만 알아들으면 만사가 오케이인 거다.








keyword
이전 03화휴양을 위하여 크로아티아 (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