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公園
네이버 사전의 말을 빌리자면, 공원은 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가 공중의 보건·휴양·놀이 따위를 위하여 마련한 정원, 유원지, 동산 등의 사회시설을 뜻한다. 그러니 공원은 마땅히 모두의 휴식과 즐거움을 제공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말이다.
여기 공원이 있다. 여기라 하면 부다페스트의 중심. 구글맵을 열어 부다페스트를 본다면, 도나우 강줄기 오른편으로 큰 네모의 초록 부분이다. 회쇠크 광장이 공원보다 앞서 보이지만, 조금 더 확대해 보면 시티파크 City park라고, 말 그대로 도시공원이 나온다.
담백한 이름이지만 규모는 아주 넓다. 회쇠크 광장을 시작으로 죽 이어진 회색 도로 부근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의 유명 온천, 세체니 온천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회쇠크 광장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엔 놓치지 않고 넓은 아이스링크장에서 스케이트도 타야 한다. 여기 사람들은 스케이트화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인기 많은 공영 스케이트장이면 말 다 한 거다.
정말 몇 가지만 더 말하자면, 겨울 관광객들은 아이스링크장 옆 테마파크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그 건너편 보이는 (이제야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버이더후녀드 성에서 잠깐의 산책을 할 것이다. 그리고는 하늘에 떠 있는 열기구를 따라 가 타보거나, 혹은 열기구와 함께한 하늘사진을 수십 장 찍을 것이다.
정말 끝. 이렇게만 해도 정말 잘 즐긴 거다. 이 넓은 공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일은 관광객으로선 쉽지 않으니까. 공원은 한 바퀴 도는 것만 해도 삼천 보는 넘게 걸을 수 있다. 과장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줄여본 게 삼천보다. 그래서 나는 회쇠크 광장까지 간 게 몇 번 안 된다. 나의 출몰지는 아주 반대편, 초록만 가득한 곳이다. 나는 시티 파크의 이 부분을 예찬한다.
어떤 곳들을 소개할까 생각하니 흥이 오른다.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정해져 있다. 다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혼란이 있는데, 알바와 마리아 덕분이라고 하겠다. 줄리아는 이곳을 텔레토비 동산이라 부른다. 나보다도 늦게 태어났으면서 텔레토비를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그곳은 텔레토비 동산으로 불리었다.
경주의 고분들에 견줄 만큼 높은 동산이라,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으로 그 동산을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나는 빽빽한 나무 틈 사이로 동산이 보이는 길을 좋아한다. 줄리아와 알바가 그곳에서 책을 보거나 하자며 같이 간 게 가장 동산에 대한 첫 기억이다. 준비하며 아이패드에 책을 다운로드하였다. 제목도 기억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튜버의 추천으로 책을 열었지만, 생각과는 다른 내용에 잠시 패드에서 눈을 뗐다. 민이 준비한 얇은 천 돗자리로 잔디의 이슬이 스며들었다. 엉덩이가 축축해지는 건지 차가워지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엉덩이가 들리는 순간, 집중력도 함께 날아갔다. 동산의 꼭대기에서 노을을 마주했다. 앉아 있는 셋과 노을을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해가 벌써 저문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노을을 계속 보았다.
텔레토비 동산은 내게 안정을 주는 곳이었다.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을 보는 것이 그곳에서 생긴 취미였다. 반쯤 벗고 태닝을 하며 누운 사람. 만세를 하며 데굴데굴 언덕을 구르는 아이들. 강아지와 노는 사람. 반쯤 누워 한 팔은 굽혀 몸을 지탱하고 한 팔로는 독서하는 사람. 눈덩이를 굴리며 내려가는 아이들. 언덕 위 아이의 썰매를 밀어주는 부모. 이 사람들 안에 속하면서 편안한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
언덕 위에서 해가 저무는 쪽을 바라보면 큰 놀이터가 보인다. 공원 곳곳엔 많은 놀이터가 있지만, 그중에서 제일 큰 곳이다. 어릴 때만 해도 참 재미있고 도전적인 놀이터들이 한국엔 많았다. 턱도 찢고 팔도 부러뜨리며 놀 수 있었다. 물이 나올 때까지 파고 또 팔 수 있는 흙땅이 있었고, '얼음땡'이나 '도둑과 경찰'을 할 때 몇 걸음만 걸으면 놀이터의 경계가 나올 만큼 좁지도 않았다. 어느 아파트 놀이터가 재밌다는 말을 듣고, 맛집 찾아가듯 몰려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먹어본 놀이터 중 여기가 단연 1등으로 맛있다. 거대한 그물 타워를 올라와 빙글빙글 두 바퀴는 감기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것. 걷다가 쑥 발이 들어가는 곳에 깔린 트램펄린. 열기구 안 그물 정글짐. 흙놀이터, 그네. 특히, 줄을 잡고 엉덩이를 판에 올려 '하강'하는 집라인 기구는 헝가리를 떠나기 몇 주 전에 발견하여 혼자 얼마나 탔는지 모른다.
재미를 빼놓고 얘기해 보자. 활기. 아이들 웃음소리. 놀이터 안 구석구석 어두운 곳이 없다. 이러한 요소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일단 저녁 8시에는 놀이터 철문이 잠긴다. 떠나간 아이들의 공간이 그 어떤 노숙자나 청소년으로부터 지켜진다는 뜻이다. 놀이터 안 카페테리아. 카페공간과 놀이터의 경계를 허물며 언제든 쉬고 언제든 함께하는 부모님의 쉴 곳도 마련하였다.
지저분하게 뛰어놀게, 맑은 공기와 함께 하게. 그러면서도 안전하게, 멀리서 지켜볼 수 있게. 민과 내가 여러 번 말한, '여기서는 아이 키우기 좋겠다'의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관광객이 붐비는 곳은 지역민들에게서는 멀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나의 공간이 관광객으로부터 침해받는다는 느낌 없이, 모두에게 휴식과 놀이를 주는 부다페스트 도시공원. 적다 보니 물론 나도 외국인이긴 하지만..
아직도 다 말하지 못할 만큼 좋은 것들이 많이 있는 이 공원은 '이 중에서 네가 좋아하는 걸 골라'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나눠준다. 참 잘 설계된 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