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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Oct 14. 2020

잔혹한 급식실

안녕 애들아!  

   

학교에서 급식은 잘 먹고 있는지요? 학교에 대한 만족도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맛있는 급식이라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 학교는 여러분의 칭찬이 자자하네요. 영양사 샘께서 여러분을 위해 정말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블랙 데이에 짜장면을 준비하시면서 급식실 문 앞에 ‘OO학교 반점’이라고 써 붙이시고 각종 중국 장식을 설치하신 것을 보고 영양사 샘의 센스에 크게 감탄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교생의 식사를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준비하시는 영양사 샘의 마법이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점심에 먹는 급식이 샘의 하루 식사 중 가장 만찬이라 항상 감사하게 먹고 있습니다.      


사진 - Young샘


이렇게 급식 시간이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면 참 좋겠지만, 급식 지도를 하다가 가끔 혼자 밥을 먹는 아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샘도 가끔 혼밥을 즐기지만, 급식실에서의 혼밥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이런 학생들에게 급식실은 매우 무서운 공간일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샘 과거의 경험과 조우하게 돼요.    

  

샘 중학교 때까지는 급식이 흔하지 않아서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었어요. 그래서 교실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밟는 경우가 허다했죠. 고등학교에 가니 정말 전교생을 다 수용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급식실이 있어 놀랐죠. 샘에게 급식실은 그냥 평범한 공간이었어요. 반 친구들과 급식을 먹고 밥이 맛없으면 불만을 늘어놓는 곳이었죠. 그때는 샘이 생각해도 급식이 참 맛없었어요. 맛없는 급식이 사회적 이슈이기도 했죠. 샘이 교사가 되고 나서 가장 놀란 건 급식의 질이었어요. 옛날 고등학교 급식만 생각하다가 많이 발전된 것을 보고 학교 급식에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불었구나 싶었죠. 어쨌든 급식실은 점심 먹는 즐거운 공간이었어요. 하지만 고3 때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같이 급식 먹을 친구가 없게 된 적이 있었어요. 어색하게 다른 무리에 껴 급식을 먹었는데, 친구들이 나를 보고 수근덕 거린다는 느낌을 받았죠.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몇 번 경험하고 나서는 점심 먹는 게 극토록 꺼려졌어요. 결국 급식실을 가지 않고, 매점에서 싸구려 빵과 소시지 같은 것을 사서 학교 한적한 공간에서 몰래 먹기 시작했어요. 누가 볼까 걱정돼 소화도 잘 안됐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죠. 이것도 남 눈치가 보여서 오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담임 샘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점심시간 외출을 신청했어요. 하지만 학교 원칙 때문에 허락해주지 않으셨죠. 비록 이런 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짧은 시간이어도 상처는 오래 기억되는 것 같아요. 이때 급식실에서 느꼈던 감정이 생생히 기억나요. 인간관계에 조그마한 문제만 있어도 매우 공포스러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전교생의 시선과 평가를 한 몸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고, 내 인간관계의 부끄러운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일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나라 드라마든 외국 드라마든 간에 급식실에서 혼자 밥 먹는 학생들을 공격하며 학교 폭력이 증폭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세계 어디든 급식실 공간이 주는 스산한 기운이 있나 봐요.        


사진 - Young샘


급식실 잔혹사는 샘이 급식 지도를 하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어요. 혼자 입장해 먹는 아이, 혼자는 아니지만 같이 먹는 아이들과 겉돌아 혼자 먹는 것 같은 아이들이 관찰이 돼요. 특히 혼자 먹는 아이는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는지 꽤 덤덤해 보이고 심지어 당당해 안심이 되다가도, 마음에 씻기지 않는 상처가 하루만큼 쌓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돼요. 마음속으로 실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수많은 눈들을 견디며 그 공간에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잘 상상이 안 가요. 어떤 학생에게 급식실, 아니 학교 공간 자체가 트라우마일 게 분명해요. 가끔 이 자명한 사실을 떠올리면 생각에 빠지게 되고 마음이 먹먹해져요.      


다행히 샘 반에서는 아직 이런 경우가 없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여러 샘들이 분명 많이 고민했던 주제인 것 같아요. 어떤 샘이 결국 급식실이 문제였다고 말하시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급식실이 대공사에 들어가 몇 개월을 반에서 급식을 해야 했지요. 사실 샘들은 반에서 급식을 하니 많이 짜증이 났죠. 하지만 평소 급식을 잘 거르던 학생이 자기 자리에서 편안하게 급식을 먹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하셨어요. 차라리 예전처럼 반에서 도시락을 먹는 게 소외된 학생을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셨죠.      


사진 - Young샘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급식실을 사용하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를 여쭤보니 좋은 조언을 주셨던 샘이 생각나네요. 먼저 초반 관찰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샘이 관찰할 수도 있고, 몇몇 아이들에게 부탁해 관심 있는 관찰을 부탁하죠. 그리고 급식 문제는 결국 아이들 간의 관계 문제이기 때문에, 아이들 자원을 적극 활용한다고 하셨어요. 반의 임원 혹은 평소 마음씨 착하고 대인배로 인정받는 학생들에게 부탁을 하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된다고. 혼자 먹는 것도 아이의 자유라고 마음 편히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고, 결국 아이들을 통한 해결을 믿어보라고 하셨죠.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린 마음이라고.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샘 반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몇몇 리더십 있고 마음씨 넓은 학생들 덕분이었던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반 임원이었는데 소외된 학생이 없게 늘 모두 챙겨 급식실로 향했죠. 그리고 유독 마음씨가 넓은 여학생이 있었는데 다소 소외된 학생들과 어울려 급식실로 갔던 게 생각이 났어요. 샘이 미처 못 발견한 사이에 이미 몇몇 학생들이 해결하고 있었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큰 사건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으면, 외출을 당분간 허용하는 것도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과거 학교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몰래 학교 담을 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하긴 샘도 그때 담임 샘이 잠깐이라도 외출을 허락해주지 않은 게 원망스럽고, 제 사정을 깊게 물어보지 않으신 게 아쉽게 느껴졌어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렇게 간단하지만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샘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 멋진 샘들이 많아요.     


여러분과 급식실의 관계는 안녕하신가요? 혹시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샘께 노크 바랍니다. 그리고 주변 친구가 혹시 힘들어한다면 샘에게도 꼭 알려주세요. 물론 우리 반은 먼저 손을 내밀 멋진 친구가 많아 안심이 됩니다. 누구에게든 급식실이 갑자기 변신할 수 있습니다. 급식실이 괴물이 되지 않게 오늘 한번 주변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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