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도 아니고 닭도 아닌, 그 애매한 시기를 버티는 법
2018년 로펌 직원으로 시작해 2020년쯤 게임회사로 이직했으니 약 6년 차 직장인이다.
주제넘지만 이 애매한 샌드위치 연차의 사람이 여러 회사를 다니며 느낀,
이 연차의 직원이 살아남는 법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당신이 신입이라면 이 글을 읽고 아직 허둥대는 당신의 선배보다 빠르게 성장할지도 모른다.
내가 신입 때 누군가 이런 걸 알려줬다면 지금쯤 훨씬 유능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테니까!
같은 샌드위치 연차라면 이직해서 내가 신입인지 경력직으로서 어떤 처세를 해야 할지 헷갈릴 때
꺼내 봐주시고, 만일 선배 연차라면 "나도 저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지" 혹은 "아직 멀었네" 하며 웃어주시라.
에드워드 리가 남긴 멋진 대사를 이렇게 쓸 줄 몰랐건만, 이보다 딱 맞는 표현을 못 찾아서 나도 외쳐본다.
나는 샌드위치 인간입니다.
당신이 생각한 그 달콤한 "샌드위치 연차" 휴일 말고,
이제는 신입사원처럼 해맑게 "모르겠습니다!"를 외치기엔 너무 커버린 것 같고,
그렇다고 알아서 다 하기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4~6년 차 직장인 말이다.
이런 우리는 회사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해야 하는가?
1. 당신은 천재가 아니다. 받아 적어라.
샌드위치 연차는 물론이고, 신입이라면 더더욱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받아 적어라. 이왕이면 예쁘게 적어놓아라. 그럼 놓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써먹는다.
볼펜이 어색한 MZ라면 그 잘난 아이폰 메모장에라도 적어라.
당신이 적어놓은 것은 상사가 딴소리할 때 최소한의 "방패"가 될 것이며,
일 놓치는 바보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마지막 방어선이 된다.
적어라. 적고 제발 다시 한번 보아라. 생각보다 내 머릿속은 하드디스크보다 RAM 쪽이 더 잘 작동한다.
그리고 꿀팁 하나 더. 회사에서 누군가 잘난 척하며 뭔가 알려주면 받아 적으며 적당히 감탄하고 칭찬해 봐라.
'이 녀석 괜찮은데?' 하며 사랑받는 직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2. 주어진 것을 명확히 파악하고 전임자의 흔적을 열심히 찾아보는 "노오력"이라도 하자.
학교에서도 보면 수업시간에 가장 열심히 필기하고,
공부도 가장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친구들이 반에 하나둘씩은 늘 있다.
잘 보면 그 친구들은 시험기간에 시험범위가 아닌 데만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킨 건 A인데 야근해서 B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걸 시간 낭비라고 부른다.
더불어 괜히 다음 날 팀장님한테 "여태 뭘 한 거야?" 혼나기 딱 좋다.
지시를 이해 못 했으면 "아, 이것을 시킨 게 맞으신가요?"라고 즉시 물어보자. 나중에 물어보면 더 혼난다.
이해가 되면 그때 자리로 돌아가 전임자의 인수인계 파일이라든지
회사 문서함이라도 뒤적여 비슷한 일을 빠르게 찾아보자.
무언가 비슷한 게 있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 흔적을 남긴 떠나간 직원이 있는 방향으로 절이라도 해주고 일을 시작해 보자.
3.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빠르게 해서 숙제검사를 맡자. 묵혀놨다가 괜히 일이 커진다.
이건 진짜 우리끼리 대외비인데, 사실 이 일을 시킨 상사도 이 일을 잘 모를 때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당신이 만든 걸 보고 나서야 "아, 이 방향이 맞겠네" 하고 판단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최대한 틀이라도 잡고 일명 "와꾸"를 빠르게 잡자.
GPT를 부여잡고 검색을 하건 전임자의 흔적을 보며 따라 하건 최대한 노력한 뒤 아주 조심스러운 듯이
"말씀하신 방향이 이게 맞을까요? 고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보자.
아니라면 더 삽질하기 전에 알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어서 고치고, 맞다면 디벨롭해라.
여기서도 포인트는 본인이 최소한의 노력을 했음과 빠른 숙제검사다.
모른다고 묵혀놓고 있다가는 오늘 하루는 잘 넘어갈지 몰라도
다음 날 "어제 어디까지 했어?" 불시점검이 일어나면 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4. 내가 일하고 있음을 알려라.
생색을 내라는 것이 아니다.
내 일은 적에게 알리지 말아야 하는 이순신 장군의 전사가 아니니, 내가 일을 하고 있음을 알리라는 것이다.
위아래 아무 데도 알리지 않고 일하다가는
내가 하고 있던 걸 아랫 직원도 하고 있고, 심지어 윗사람은 이미 다 해둔 일일지도 모른다.
공유하고 소통하라.
샌드위치 연차는 그 과정에서 조율하는 법을 배우고, 협업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메일을 받았으면 참조가 아닌 이상 수신했다는 답장을 하고,
메신저를 받았다면 일을 줘서 감사하지 않아도 "확인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정도는 덕담하며 일하자.
5. 위아래로 치여도 사무실 안에서는 싸우지 말자, 욕하지 말자, 울지 말자.
학생도 아닌 나에게 타일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건 나에게 "아직" 애정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감정적으로 내뱉는 것과 업무적으로 타일러주는 것은 다르다. 그건 명확히 구분하자.
나도 누군가에게 쓴소리 하고 지시하면서 감정이 안 담길 수는 없지만, 회사 내에는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너무나 많기에 다 나에게 돌아올 화살이다.
회사 안에서는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는 것처럼 퍼졌으면 하는 얘기만 하고,
싫은 사람에게도 일단 미소 짓고 잘해주자.
전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 등에 칼을 꽂는 것만큼 아픈 게 없고,
빌런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의외의 순간에 내 편이 되어주는 것만큼 든든한 게 또 없다.
힘들고 서럽다고 우는 순간 내가 쌓아 올린 여태까지의 모든 게 무너진다.
울지 말자. 눈물이 차오르면 화장실 가서 울고 나와 아무렇지 않은 듯 일하자.
그래야 후배들도 나를 믿고 따른다.
그건 샌드위치의 자존심이다.
6. 최소한 내 직무 공부를 하는 성의는 보이자.
내 직무가 원하는 대로 흘러왔건, 어쩌다 보니 이 직무를 하고 있건 샌드위치 연차가 되면 되돌릴 수 없다.
되돌리겠다고 신입으로 가기엔 연봉이 아쉽고, 면접 때마다 "여길 왜 왔어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아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이걸 하는 게 맞나' 하며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내 이력서에 경력 칸만 한 칸 틱 채웠다고 끝날 게 아니라면 "경력기술서"와 "자격"란을 채워라.
대학생들이나 하는 거지, 생각하며 내 직무의 기초자격증을 코웃음 치며 무시하지 말고 준비해 봐라.
이론적인 것도 내 머리에서 정리가 되고 생각보다 업무가 수월해진다.
수월해진 업무 덕에 시간이 남아 내 업무를 정리하고 슬금슬금 업무를 확장해 경력기술서를 채워나가라.
뭐, 운이 좋으면 자격증 덕분에 연봉이 올라 내 직무에 대한 애정이 다시 불타오를 수도 있다.
7. 회사 밖에서 답을 찾자. 외부 인맥을 활용해라.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업계나 직무 사람들이 모이는 스터디에 가자.
'술터디' 말고 진짜 스터디에 가서 업계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일에 대한 노하우도 공유하고 성장해서
업무에 적용하자.
회사 안에서 이 직무에서 나를 이끌어줄 사람을 못 찾았다면 회사 밖에서라도 찾게 된다.
그렇게 만난 선배가 업무에 도움 되는 자료를 쥐어주기도 한다.
또 다른 팁으로, 외부 협력사나 거래처와 일할 때 적극적으로 전화해서 물어보고 다가가 보자.
생각보다 다음에 일할 때 나를 기억하고 먼저 도와주는 경우가 생긴다.
나의 회사가 '갑'일지라도 내가 그 사람의 '갑'은 아니니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자.
세상은 좁고 업계는 더 좁다. 언제 어디서 위치가 바뀔지 모른다.
이렇게 또 한 걸음 성장해서 빠르게 샌드위치를 벗어나거나, 예쁨 받는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
8.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자.
조금 연차가 찼으니 어떤 일을 더 배정받고 싶냐 물을 때 하고 싶었던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특히나 내 상사의 성향에 맞고 내 연차에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조금 더 빠르게 샌드위치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자아실현은 회사 밖에서 하는 게 답일 수 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엉덩이 붙이고 오래 앉아 있는 게 승진의 척도인 회사는 문제 안 일으키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게 맞고, 어떤 회사는 액티브하게 일을 벌여서 눈에 띄어야 승진의 지름길일 수 있다.
나 혼자 하고 싶은 일보다는 회사의 성향과 내 상사의 성향에 맞는 일을 찾자.
아직도 우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9. 사교성과 수다쟁이는 다르다.
누구에게나 직장인 자아가 있다.
수다쟁이인 줄만 알았던 과장님은 집 가면 한마디도 안 하는 내향인이었고,
내향인인 줄 알았던 부장님은 사실 돌잔치 사회자에 축가 전문 가수일지도 모른다.
내키지 않아도 수다를 좋아하는 나의 상사를 위해 점심시간에 보지도 않던 연애 프로그램을 보고는
"저번 주 나는 솔로 보셨어요?"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 정도는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에 휩쓸려 "저는 사실 투핫 좋아해요" 하며 개인 취향이나 사생활을 너무 많이 까진 말자.
유행하는 예능 정도는 가벼운 화젯거리지만, 내 진짜 모습까지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
회사 야유회 MC나 장기자랑 출전까지는 본인의 성향에 맡기자.
물론 그마저도 해야 하는 분위기의 회사라면 어쩔 수 없이 눈을 꼭 감고 한 번 해야 끝난다.
해야만 한다면 차라리 애매한 초중반에 나서서 해라.
그래야 뒤로 갈수록 빠르게 잊힌다.
괜히 막내만 내보냈다가는 막내만 부려먹는 선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모습들은 누군가의 휴대폰에 고이 박제되어 퇴사하고도 꽤 오래 돌아다닐 것이다.
10.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 회사는 회사일뿐이다.
'최고의 복지는 동료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림을 이쯤 되면 알 것이다.
정말 퇴사하고도 내내 볼 만큼 괜찮은 동료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런 동료를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죽고 못 살던 동료에게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았다가 약점으로 돌아오거나,
연봉 차이로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결국 회사는 모여서 일을 하는 공간이며, 생존을 위해 돈을 벌러 온 곳임을 인정해야 한다.
평생 나를 끌어안고 키워주실 것 같던 선배도 연봉을 올리려 떠나고, 인사평가가 괜찮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이직하겠다는 나를 붙잡던 인사팀의 달콤한 말도 다 믿을 것은 아니다.
적당한 거리와 내 통장의 숫자, 이 두 가지만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이제 당신도 알았을 것이다.
샌드위치 연차는 아래로는 올라오는 후배들의 숨소리로 조급해지고,
위로는 선배들의 등이 너무나도 크게 보이는 애매한 자리다.
우린 이 시기를 잘 버티고 나면 당신은 어느새 선배들의 등판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저 선배처럼 되고 싶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샌드위치 연차는 원래 그런 거니까.
점심 전 반나절을 버틸 지혜와 점심 이후를 버틸 적당한 처세.
이것만 있으면 일단 오늘 하루는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