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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Nov 24. 2024

Do you want them as they come?

주는대로, 생긴대로

2009년, 미국여행 당시, 음식은 '주는대로' 먹는건 줄로만 알고있던 나에게 매우 생경한, '이거 넣고 저거 빼고'를 해야하는 샌드위치 주문을 할 기회가 생겼다.


고개를 살짝 들면 오른쪽끝에서 왼쪽끝까지 어질어질 많은 종류의 샌드위치를 담은 현란한 메뉴판이 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내리면 각종 샌드위치 , 치즈, 드레싱과 채소류가 어질어질 펼쳐져 있다. 짜장, 짬뽕도 고르기 힘들어 짬짜면이 있는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아줌마 순두부찌게 주시는데, 계란은 반만 익혀주시고, 파는 빼주시고, 고추가루는 티스푼으로 반스푼 그리고 다진 마늘은 듬뿍',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니 말이다. '고추장, 된장, 초고추장, 볶음고추장, 청국장'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기분이 이런걸까.

고개는 뒤로 제끼고, 입은 반쯤 벌린 채, 엉거주춤 메뉴를 정독하던 차, 남편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하고 찌른다.

What are you doing? People are waiting!


그제서야 내 뒤로 서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창피함에 가게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안 먹어! 드럽고 치사해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남편이 너무 야속하고 서운했다.


시간이 훌쩍 지난 2024년, 나는 다시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타코 전문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멕시코 음식 '타코'는 밀가루 혹은 옥수수가루로 만든 전병, '또띠아'에 닭고기 혹은 소고기 혹은 튀김옷 입힌 생선을 얹고 채 썬 양배추, 토마토, 양파 등등을 그 위에 얹어 반으로 접어 먹는 음식이다.


나는 Fish Taco를 두개 주문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내 타코를 눈앞에서 만들던 직원이 나를 보고 물었다.

****************** they come?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율에 익숙한, 그녀의 천둥번개같은 질문에 매우 슬로우한 나의 뇌가 순간 정지.

누가 온다고요? 뭐라고요?

Pardon?

Do you want them as they come?

Ah!  yes, please.


서빙되는 그대로, 다시 말해 주는대로 먹을테냐는 말이다.

나는 주는대로가 좋다. 나는 알러지도 없고, 편식도 없다. 만두라면 속이 알차면 좋고, 타코도 속이 알차면 그만이다. 주는대로가 편하다. 나는 주는 이의 선의와 성의를 믿는다.




집에 오면서 그 말을 되뇐다.

Do you want them as they come?

그리고 이렇게 바꾸어 읽어본다.

너는 그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니?

내 자신이 있는 그대로 수용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들이 원래의 나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던 마음이, 타코의 마음같아서 주는대로 먹는게 좋은지도 모르겠다. 과장되고 포장된 나의 껍질을 벗으면 사람들이 실망할까봐 두려웠던 내 마음처럼, 타코의 마음이 그럴까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만 나라도 '생긴 그대로', '주는 그대로의 타코'를 먹겠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 맘에 드는 사람이길 바라며, 이리저리 재단하려하는 이율배반적인 내가 겹쳐져서, 적어도 타코만은 주는 대로 받아들이며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법을 연습하려 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간절히 바랬던 말.

그만하면 되었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  
너 꼴리는대로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인생의 정답을 찾아나섰던 나에게,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정답이 있을거라 믿었던 삶이 벅찼던 나에게,


I want you as you come.

너 생긴 그대로를 원해라는 말을 간절히 듣고 싶었던 나와 타코가 같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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