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15일 차
파도
파도가 몰려온다.
시커멓고 커다란 뭔가를 품고 몰려온다.
그리고 몇 발치 앞에서 떨군다.
하얗게 일구어진 거품이 어깨를 바짝 세우며 일어선다.
그렇게 연이어 기세 좋게 몰려오다
모래사장에 부딪혀 부서진다.
넋을 놓고 보는 사이
시커멓고 덩치 큰 것이 또 몰려온다.
뉘는 그 녀석에 올라탄다. 신난다.
뉘는 그 녀석에 먹힌다. 무섭다.
뉘는 그 녀석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감탄한다.
파도는 너를 먹으려고 한 게 아니라고,
그냥 올라타보지 그랬어.
그냥 보기만 하지 그랬어.
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 그랬어라고 하는 이는
파도를 다 아는가.
파도에 먹혀본 이는
파도를 이해해 보려고 평생 애썼지.
그래야 파도를 용서할 수 있으니.
그래야 살 수 있으니.
먹힐만해서 파도가 삼켰으리라고 믿자면
죽으니까.
그 입을 다물지.
파도가 그럴 리 없다고 말하는 자.
파도를 이해하라고 말하는 자.
파도를 더 사랑해 보려고 애쓴 자를 향한
그 입을 다물지.
사과를 바랐던가
양해를 바랐던가
동의를 구했던가
그 입을 다물지
다물지.
오해야, 그건.
오해는 상대의 의도와 내가 이해한 내용이 다를 때 생긴다. 그렇다면 당연히 오해를 해결할 수 있는 이들은, 그 당사자인 상대와 나여야만 한다.
헌데, 매우 수시로 타자들이 나서서 부자연스럽게 상황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매우 수시로 해결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타자들은 당사자들이 실제로 무엇을 의도했는지, 무엇을 어떻게 잘못 이해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오고 간 의도와 이해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그 당사자들이 왜 그것을 의도하고, 왜 그렇게 이해했는지를 설명할 그들의 역사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른다. 왜냐하면 당사자들도 본인들의 그 마음의 역사를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타자가 나서서 너 그거 오해라고 끼어드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래서 좀 거칠지만,
그 입을 다물라 했다.
사실 지금 예약경쟁이 치열한 동해바닷가 리조트에 와 있다. 오는 동안 잔잔한 마음을 후려치는 메세지를 하나 받고는 하나도 안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다 떠오른 글이다.
아침, 동해로 출발하기 전, 일주일 전에 받았던 위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내과를 다시 방문했다.
같이 가자며 모자를 찾아 쓰시는 아빠를 애써 사양하며 혼자서 갔다. 아무것도 아닐 건데. 뭐 하러 같이 가냐며 호기롭게.
하지만 대기실에 앉아있는 내내,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있다.
조금 뒤, 내 차례가 되었고, 아빠께 호언장담했듯이 별거 없는 시시한 결과를 받아 들고 나와, 오늘 동해바다로 출발하기 위해 부모님과 동생이 기다리고 있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후문 어귀에 다달았을 때, 익숙한 실루엣, 아빠가 저 쪽에서 특유의 직진 순재 스타일 걸음걸이로 오고 계신다.
그러다 나를 보셨는지 멈추신다. 그리곤 가만히 몇 초 서 계신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내 표정을 애써 살피시고 있음이 보인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 보였다. 아빠의 얼굴도 조금씩 선명해졌다.
너,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안 와서... 결과 안 좋아서 어디 딴 데 갔나 싶어서 나와봤어.
80이 다 되어가는 아빠에게
50이 다 되어가는 딸은
여전히 병원에 같이 가 줘야 할 것 같은 존재.
별거 아니래요~~~
인자 출발해요~~~
그래? 다행이네. 참치김밥 사놨다. 배고프니까 얼른 한 줄 먹고 출발하자~~~
다행이다.
부모님이 그토록 채우고 싶어 하는 내 위가 별일이 없어서.
많은 세월 지나 이젠 서로 오해할 일이 없어서.
이제 좋을 날만 남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