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it or leave it.

by MoonA
싫으면 말고.


두 눈 질끈 감고 고백한다. 거절당할까 마음 속으로는 '싫으면 말고'를 몇 번씩 되뇌인다.

니가 거절한다해도 나는 상처받지 않을거다.


동아리방에서 처음 그를 만난다.

야구점퍼에 큼직한 배기 청바지, 그리고 반스 단화를 신고 있다. 얼굴은 동그란데, 손가락은 가늘고 긴 편이다. 험한 일은 해본 적 없는게 분명하다. 하얗고 곱다.

웃는다. 살짝 도드라진 송곳니가 보인다. 덧니가 있다. 눈이 안보인다. 웃는다.

금새 덧니가 사라지고, 눈이 다시 나타난다. 잠시 웃음을 멈춘 사이.


그가 좋아졌다. 가만 있어도 선한데 웃을 때 더 선해지는 얼굴과 길고 흰 손가락이 내 배우 소지섭을 닮아서. 물론 그의 코는 소지섭 코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당시 유행하던 펄이 들어간 연보라색 립스틱과 보라색 립라이너를 샀다. 스마트폰이 없어 그때 그 몰골을 찍어놓은 사진이 없는게 천만다행이다. 여튼 그에게 예뻐보이고 싶어서 무척 노력했다.


나 말고도 그를 좋아하는 동아리방 선후배 동기들이 꽤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동아리방에는 드나드는 회원들이 지금의 SNS처럼 사용하던 비망록이란 것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내 마음을 적기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학교 앞 주점에서 시작되는 연애의 역사는 고증이 매우 잘 된 장면들이다.

나도 학교 앞 주점에서 동아리 회원들이 같이 한잔 하던 날 그에게 고백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랬듯이, 먼저.

나 너 좋아해. (Take it or leave it.)

니가 거절한다해도 나는 상처받지 않을거다.

니가 거절한다해도 나는 상처받지 않을거다.

니가 거절한다해도 나는 상처받지 않을거다.


니가 거절하면 나는 상처받을거다.

니가 거절하면 나는 상처받을거다.

니가 거절하면 나는 상처받을거다.


그렇게 몇 분 같은 몇 초가 흐르고,

나도.

지하 6층 주차장까지 내려갔던 마음이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다. 몽글몽글 술기운도 올라온다. 중학교 때, 신체검사 하던 날, 체중계를 들고 들어와 나를 당황시켰던 짝사랑 미술선생님이 끌어내린 내 자존감이, 이제 우주를 날아다닌다. 소주에 살짝 붉어진 그의 얼굴 말고는 그날 다른 일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아리 방에 있던 비망록은 삐삐밖에 없던 우리들 연애에 SNS가 되었다.

수업 막간 동아리방을 오가며 나와 그녀석이 써놓은 간지러운 이야기들은 동아리방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되었다.


Take it or leave it.

매우 방어적이고 또 한편 공격적인 말이지만,

꼭 잡고 싶은 일이 있거나 사람이 있을 때, 나는 곧잘 이 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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