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k Johnson is dead.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고민과 끝이 맞닿아 있음을 자주 깨닫는 요즘이다. 연상호 연출 드라마 '지옥 1,2', 공포 영화 시리즈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배우 유승호의 앳된 얼굴이 담겨진 영화 '집으로', 얼마 전에 봤던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다큐영화 'Dick Johnson is Dead'의 줄거리를 읽고 머릿속에 마구 튀어오른 영화와 드라마 제목들이다.
다큐영화 'Dick Johnson is Dead'에는 노환으로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가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기상천외한 마지막 소원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화감독인 딸 Kirsten과 그녀의 아버지 Dick은 몇해 전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We lost her several years ago before she passed away.
우리는 그녀가 임종하기 이미 여러 해 전에 그녀를 잃었다.
Kirsten과 Dick은 죽음을 맞이하는 상상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다큐멘터리 영화에 담기로 했다. 아버지를 어머니처럼 잃기 전에 생이 다해가는 하루하루를 최대한 긍정적이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정다운 말투의 딸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공유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따스하다.
영화 촬영을 위한 Dick의 장례식 장면을 연출한다. 가족, 친지, 친구들과 Dick이 만났던 많은 환자들이 모여 살아생전의 Dick을 회상한다. Dick은 장례식 장면이 촬영되는 식장 문 뒤에서 그들을 지켜본다. 그것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장례식은 죽기 전에 하는게 맞겠어.
내가 죽은 후에 이 사람들이 다 모이는게 나에게 무슨 의미람.
남겨진 이들이 내가 없는 세상이 슬퍼 서로를 위로하러 모일때 모이더라도 나를 위한 장례식은 죽기 전에, 살아있을 때 하는게 맞겠어.
Dick은 정신과 의사로 평생을 살았고, 그의 아내처럼 그도 치매 증상이 심해지기 전까지 환자를 만났다. 죽기 직전까지도 사회에 봉사할 기술과 능력이 있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나도 마지막까지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Dick이 평생 했던 운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던 날, 그는 애써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할 수 있던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맞이하는 나이가 되어가고 보니 이 장면은 쉬이 넘어가지지 않는다.
칠순이 되어서 비로소 일을 놓은 아빠에게, 이제는 시간 제약 없이 여행이나 좀 다닐 수 있으려나 기대했던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이내 공황장애가 왔던 것이 이 장면과 연결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Dick은 이렇게 말한다.
I think I am pretty good about living in here and now.
나는 '지금 여기'에 사는 걸 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덜 중요한 일로 더 중요한 일을 보지 못하지 않기를.
나의 결정이 타인의 기준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기를.
최대한 많은 장면이 스쳐갈 수 있도록 추억을 많이 만들기를.
The Deepest Fear is Left Behind.
내가 불구덩이에 있는 것보다 자녀가 불구덩이에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게 더 두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느낄 때가 많다. 통제 밖에 있는 자녀의 방황을 믿고 지켜봐주는 것, 필요한 최소한의 지지를 이어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 새삼 어릴 적 나를 바라보던 부모님의 속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이런 무력감은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음은 죽음을 맞이하는 이보다 남겨진 이들에게 더 두려운 일이다. 살아있는 동안 화양연화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나를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남겨질 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의 죽음 이후 혼자 남겨져 후회와 연민으로 덜 고통스럽도록.
All I can say is that Dick Johnson is dead.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그것 뿐이다.
알 수 없는 미래, 어떤 주식이 하늘을 뚫고 올라갈지, 미국과 중국사이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AI가 인류의 삶을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바꾸어 놓을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쌀알을 굴리고, 점괘를 돌리지 않아도, 분명한 미래는 우리는 모두 왔던 길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몸이 큰 사람에게 'Sweat like a pig'라는 농담이 농담이 아니듯,
죽음을 기다리는 자에게 죽음을 얘기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고민과 끝이 맞닿아 있음을,
죽음을 더 많이 말할수록 더 좋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커피 한잔과 와사비 맛 새우깡을 놓고 밤새 떠들 사람들이 좀 생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