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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by MoonA

십 수년 일한 회사를 퇴사하기로 결정한 친구가 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두렵다고 한다. 무엇이 두렵냐고 하니, 모르겠다고 한다. 그냥 두렵다고 한다.


퇴사를 축하하며 밥을 같이 먹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 나의 축사가 적절했는지 생각해 본다. 칵테일 한잔에 애써 감춰둔 꼰대가 나왔을지도 몰라서.


더 멋진 문이 열릴거야.
나는 그랬어.
너도 반드시 그럴거라 믿어.


그의 두려운 마음은 훅 날려버린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감을 책으로 배우면 이런건가 하며, 그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보기 위해 나의 퇴사들은 어떠했었는지 다시 떠올려본다.


첫 번째 퇴사는 2000년 겨울이었다.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두려웠었나? 찰나는 그랬고, 그 두려움의 에너지를 모두 모아 다음 직장을 구하는데 썼던 듯싶다.


두 번째 퇴사는 2001년 겨울이었다. 그랬다. 또 1년을 채우지 못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안 맞는 일이었다. 그때 두려웠었나? 역시 찰나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불안의 에너지를 다음 직장을 구하는데 썼던 듯싶다.


세 번째 퇴사는 2004년 겨울이었다. 이번엔 제법 버텼다. 잘 참고 잘 견디는 편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회상하다 보니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두려웠던가? 역시 일주일의 틈도 없이 다음 직장으로 이어지느라 두려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네 번째 퇴사는 2005년 겨울이었다. 퇴사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결정을 하느라 했던 퇴사였다. 싫어서 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결정이 틀린건 아닐지 두려움이 있었다.


그해엔 결혼에서도 퇴사를 했다.


다섯 번째 퇴사는 2011년 겨울이었다. 그리고 입사도 퇴사도 필요 없는 내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두려움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물망 없는 곡예를 타는 그런 수준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극강의 두려움을 극복하면 더이상은 무서울게 없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더는 무서울게 없는 결기로 2019년 승승장구하던 사업을 접고 부르는 사람도 없는 태평양을 건너갔다.


나는 참 무모한 사람이구나.

그냥 참고 버티는 미련둥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신중한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잠깐, 정신차리고 본론으로 돌아오자.

내 성찰을 하려고 시작한 회상이 아니니.


여하튼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퇴사는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기회라고, 나는 그랬다고 그에게 말해준 게 영 틀린 말은 아니라고 자기 정당화를 해본다. 그래도 다음엔 나도 두려웠더라는 말을 꼭 얹어주기로 마음먹는다.


P.S.

두려울 틈이 어딨어?!

라고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

라고 나의 으스대는 이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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