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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어.

by MoonA

주말엔 남편과 일주일치 장을 본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 둘에게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승전 빌드업 없이 툭툭 내어놓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편이 말했다.

회사에 티나라는 직원이 있어. 그녀가 하는 일은 사내 간식 관리야. 그러니까 매일 3교대로 일하는 사원들을 위한 간식이 적당히 채워져 있는지, 사원들이 원하는 간식이 무엇인지와 같은 것을 확인하고, 간식장을 채우고, 필요한 간식을 본사에 요청하는 일이야. 그녀는 그 일을 진심을 다해서 하는 것 같아. 내 보기엔 대충 해도 될 일 같은데.
가끔 나도 내가 주어진 일에 비해서 너무 몰두하는 건 아닌지, 과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는 건 아닌지 싶을 때가 있는데 그녀를 보면 그런 생각들이 잠시 고요해지기도 해.

속내를 잘 꺼내는 법이 없는, 달걀 껍데기처럼 미련 없이 버릴만한 이야기들만 주로 하는 남편이 이런 노른자 같은 이야기를 꺼낸 것이 반가웠다. 하지만 내가 그 반가움에 호들갑을 떨면 거북이 목처럼 애써 꺼낸 마음이 쑥 들어가 버릴까 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별게 아닌 것 같고, 나라는 사람이 그다지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질 때 맥이 탁 풀릴 때가 있는데. 그래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만 앞서서 이 일을 필요 이상으로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나 싶을 때도 있고.

한국에 있을땐 제발 쓸모가 없어지는게 소원일 때도 있었다. 나를 부르는 곳이 없는 곳이 천국이겠지 할때도 있었다.

나와 남편 둘다, 부르는 곳이 있거나, 가기로 정한 곳이 있어 미국에 온 것이 아니라서, 남편은 미국 떠나온지 십 수년 만에, 나는 그야말로 타향에서 처음부터 다시 쓸모를 찾아 삼만리를 하게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쓸모를 끊어낸 일이 줄창 달고 다니던 산소호흡기를 끊어내는 일인 줄은 몰랐던거다.


그러한 사유로 대놓고 드러내기엔 이 겸연쩍고 머쓱한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바쁜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하는 어린애 어리광 같을까 봐 이리저리 돌려 표현하던 내 마음이 그에게도 있구나 싶은 생각에 공감도 되고 안쓰럽기도 하다.


얼마 전 이런 마음을 빙빙 돌려 말하던 나에게 친구가 물었던 적이 있다.

나: 지금 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친구: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나:......

그날은 시커먼 우물 속 같은 내 마음을 나도 몰라서 우물쭈물 시원한 답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쓸모가 잘 쓰이는 일.


우리는 왜 이런 생각에 골몰할까? 고민도 하고 공부도 좀 해보았다.

인간은 무리 안에서 쓸모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쓸모는 타인의 시선과 인정으로 결정되어 왔다. 더불어 인간은 '왜'를 묻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에겐 쾌락만큼, 혹은 쾌락보다 '왜 사는지', '나는 누구인지?' 혹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가 중요하다.

쓸모에 대한 욕구와 갈증은 한때 우리를 성장시킨 채찍 같은 것이었다. 달리고 있는데도 계속 맞아야 하는 말들처럼, 스스로 그렇게 휘몰아쳤던.


여전히 쓸모를 인정받고 싶고, 증명하고 싶은 우리들.

어제도 그와 같은 생각으로 한때를 보낸 나, 그에게 이렇게 한마디를 건넸다.


우리 참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치?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는 딱 알맞는 골디락스의 스프같은 적당히 쓰이는 적당한 쓸모라는게 있을까?

장본 물건들을 실어나르는 꽤 쓸모있는 팔뚝만으로 만족하고 살게 되는 날도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마왕 신해철이 당신은 태어난 것만으로 이 세상에 할 일을 다했다고 하는데도 믿지 못하겠단 말이다. 나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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