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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고

by MoonA

백설공주의 거울이 백설공주에게 '너는 못생기고, 볼품없고,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사람'이라고 했다면, 우리가 지금 아는 백설공주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왕비의 거울이 왕비에게 '너는 예쁘고, 착하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면 우리가 지금 아는 왕비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거울은 타인이다. 우리는 수시로 거울에게 묻는다. 거울의 반응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린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좋은 집에 살면서도 상연이는 사랑에 목마르며 외롭다. 상연이의 거울은 상연이의 부족한 면만 매일 얘기하기 때문이다. 거울의 의도는 그 2%를 채워 더 나은 이를 만들고 싶었겠지만, 상연이는 그 말들로 98%의 자기 상을 세워갔다. 그리고 그녀의 자기상은 타인을 '원망'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상연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아버지가 안 계셨던 은중이지만 은중이의 거울은 매일 그녀의 빛나는 면들을 비추었다. 은중이는 상연이를 부러워했지만 그것은 드라마의 카피처럼 '선망' 이었다.


상연은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사람임을 거울에게 증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상연이 거울로부터 받고 싶은 인정에 대한 열의가 집착이 되는 과정에서, 그녀가 세우려고 했던 자존심때문에 자존감이 무너지는 과정을 함께했던 은중이 그녀로부터 수시로 상처를 입는다. 그럼에도 또 용서하고 용서하는 은중의 성격 또한 상연을 무너뜨린 거울로부터 나온다.


상기하자. 거울은 타인이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의 눈과 말에 우리는 수없이 우뚝 서고 또 스러진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자고 하지만 진짜 그럴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조차 또는 이제 의식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 조차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모순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시들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 안에는 8살이 살고 있다고 한다. 8살이 어떠했는지 떠올려보면 쉽게 상상이 된다.


옷을 잔뜩 산다. 왜? 입고 나갈 곳이 있으니까. 옷을 안 산지 수년 째다. 왜? 입고 나갈 곳이 없으니까. 증명 끝.


상연의 엄마, 그리고 상연의 가장 커다란 거울, 윤현숙은 교사였다.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을 세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비범한 교사도 있지만 윤현숙은 흔히 찾을 수 있는 교사이다. 많은 교사들이 내 아이가 학교에서 보는 참 마음에 드는 학생같기를 바란다.


나는 윤현숙이 상연과 같은 학교의 교사였다는 점, 은중이의 손바닥을 때렸던 상연을 나무라며 똑같이 때렸던 점, 성적표를 들고 와 칭찬을 기대한 상연에게 공부를 잘하는건 특별한게 아니라는 말을 한 점, 은중이를 만나면 유난히 밝아지는 모습을 보였던 점... 그 모든 장면들은 묘사한다. 상연이에겐 엄마 윤현숙이 아니라 교사 윤현숙만 있었다는 점을.

윤현숙은 아들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아들을 잃고, 완전히 자기 자신을 놓아버렸다. 상연이도 상학이도, 윤현숙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충조평판_충고, 조언, 판단, 평가_의 대상이었다. 그녀 딴엔 사랑이었겠지만, 그러한 형태의 사랑은 그녀가 죽는 날까지 감추어져 아이들에겐 보이지 않았다.

반면 은중의 엄마, 은중이의 가장 큰 거울, 장순영은 언제나 은중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극 중엔 은중이 동생의 발가락 손가락이 잠시 나오긴 했지만, 엄마는 은중이에겐 항상 귀와 마음이 열려있었고, 엄마의 위치에서 딸을 도울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나는 사실 장순영이 윤현숙에게 은중이가 상연이에게 맞았다는 말을 전한 것은 탐탁치 않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있었던 일로 남겨두었어도 될 일이라 여긴다. 여하튼 이처럼 과하리만치 장순영은 은중이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거울은 자기 마음대로 대상을 비추고 판단하는데, 우리는 거울에 상당한 의지를 하고 산다. 거울의 판단이 절대적일리가 없다는 것을 잊고 산다. 심지어 그 거울들에게도 그들이 바라보는 거울들이 있다는 점도 잊고 산다.


상연의 마지막은 그렇기 때문에 더 아픈 장면이다.


고생했어.

은중이 나지막히 뱉어낸 말이 상연이 뿐만 아니라 듣는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건, 우리 모두가 거울에게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느라 고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울의 평가에 기대어 사는 우리의 나약함을 인정하자. 그리고 서로에게 좋은 거울이 되기로 해보자. 아무래도 거울을 없앨 수는 없는것 같으니.

은중과 상연보다 그들의 엄마들을 가끔 떠올려보자. 어떤 거울이라도 흠이 없는 거울은 없지만 흠이 좀 있어도 어떤 거울이 낫겠는지 생각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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