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만 잘하는 괴물로 키울 수는 없습니다 by 소피

by MoonA

한국에서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요즘 미국이 관세로 심술을 잔뜩 부리는 차라, 가지고 계시다 한국에서 뵈면 받아도 된다 말씀을 드렸지만, 내심엔 저자가 보내주시겠다 우기길 바랬다. 반가운 이가 꾹꾹 눌러적은 배송정보가 적힌 종이의 글씨와 상자 안에 꽁꽁 보호된 한글 가득한 책을 꺼내드는 짜릿함을 알기에. '이 물건은 개인이 개인에게 전하는 선물임을 맹세한다'는 뭐 그런 말이 적힌 종이조차 한글이기에 반갑다면 쉬이 이해가 될 것이다.


책을 보내주신 분이자 저자는 내가 아들을 '공부만 잘하는 괴물'이 아니라, '공부 못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키워보겠다는 도전을 시작했던 10여 년전 만난 소피 선생님이다.




책이 현관문 앞에 도착한 때엔 마침 이곳에서도 이어가고 있는 책모임을 하는 날이었고, 또 마침 모임에 참여한지 얼마 안된 스물 다섯 미국인 친구가 한국사회에 대해 질문을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 어머니가 있어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한국 사람들이 경쟁적인 사회로 인한 스트레스나 정신질환을 미국사람들보다 더 많이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기똥찬 타이밍의 질문을 들으며 소름이 좌악 돋았다. 아마존택배였다면 주방구석에 무심히 던졌을 상자를 모두가 모여있는 테이블로 가져갔다. 역시나 책을 읽는 이들의 책에 대한 반응은 전광석화같았다.

그건 무슨 책이에요? 한국에서 온거에요?

네, 한국에서 '우숨터'라는 이름의 모임에서 오랫동안 함께 책을 읽으며 제가 많이 의지했던 분이 이번에 책을 내셨어요.

많은 한국의 엄마들은 자녀가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가득하지만, 사실 말은 쉬운데 그걸 어떻게 하는건지 몰라서 어려움을 많이 겪어요. 우리도 경쟁적인 사회에서 학교다니고 사회생활하고 후달린 시간을 보내왔던터라.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고, 또 자녀들도 좋은 어른이 되도록 돕고 싶은데, 실제로 아이에게 많이 하는 말은 '숙제했니, 학원 가야지, 학원갔다왔니? 몇 점받았어? 니네 반에 누가 제일 잘했어?' 이런 거니까. 그래서 그런 엄마들 중 하나였던 내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책모임이었어요.

이 책에는 그 모임을 통해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은 당신 본인이었다고 말씀하는 저자가 세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낸 과정과 함께 읽었던 책들, 그리고 함께 했던 엄마들의 소회가 담겨있어요.

아 그리고, 방금 질문에 답하자면, 다른건 몰라도,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일찍부터 경쟁적인 구도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건 확실한 것 같아요. 4세 고시라던지, 7세 의대반 이런건 미국엔 없으니까요.




책모임을 끝내고 혼자 남아 책을 읽는데, 눈은 문장들을 따라가는데, 머리 속엔 모여 앉아 책을 읽고, 줄을 긋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때로 눈물짓고, 손을 잡아주고, 손뼉을 치던 그날의 장면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리고, 몇 해전 있었던, 꽤 인상깊게 남았던 장면,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떠올랐다. 규모가 제법 큰 프로농구 경기장에서 치루어진 졸업식이었다.

근사한 졸업가운과 학사모를 갖춰입은 졸업생들이 사회자가 이름을 한명 한명 정성들여 호명하자_워낙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많기에, 이름을 정확히 읽기가 엄청 어려운데, 졸업식 며칠전부터 연습해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난이도가 높은 아들의 이름도 미국와서 처음으로 바르게 발음하는 것을 들었다._ 무대에 오르고 교장선생님과 악수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성대한 식을 치르고, 모든 순서가 끝났다. 장장 4시간의 식이 끝나고 이제 집에 가나 싶은 찰나 경기장 천장에서 갯수를 셀 수 없는 수많은 금빛 풍선들이 허공을 환상적으로 메웠고, 졸업생들은 환호를 하며, 서로 축하하고 있었다. 오래 앉아있던 엉덩이가 아파오면서도 문득 고등학교 졸업식이 어쩌면 이토록 화려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여러 지인에게 물어보니 미국에선 고등학교 졸업이 준어른에서 비로소 어른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라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준어른으로 애쓴 고등학교 4년이 그들의 인생에서 의미있는 서사로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덧붙였다. 수능을 치르고, 대입을 준비하는 사이에 스쳐지나가는 일 정도로 고등학교 졸업식을 기억하는 나에겐 매우 인상깊었고 부럽기까지 했다.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에 나오는 좌충우돌 '김부장'이 되는 것도 녹록치 않은 경쟁사회에서 대입을 위한 과정으로만 여겨졌던 고등학교 졸업에 무엇이 필요했는지 알게 된 기회가 되었다.


미국 교육 한국 교육보다 무조건 더 낫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름의 문제가 분명하다. 하지만 학교가 오징어 게임의 현장이 아니라는 점, 학교가 아이들을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은 여기 교육에서 확실하게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아이가 괴물이 되지 않게 도운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투쟁했던 시간이었다. 수년 전 미국에 올 때, 스스로에게 물어본 것이 있다.


나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도망을 가는걸까? 비겁한 걸까?


오래지 않아 답을 찾았다. 괴물은 세포에 새겨진 유전자같은거라 도망을 갈려야 갈 수가 없다는 것. 계속 수련하고 수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비겁할려야 비겁할 수는 없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장애물을 넘어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든 엄마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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