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Nexus by Yuval Noah Harari
읽은 기간: 1월 31일~2월 7일
읽은 분량: Prologue
We have named our species Homo sapiens- the wise human.
But it is debatable how well we have lived up to the name.
......
If we Sapiens are so wise, why are we so self-destructive?
지식은 아는 것, 지혜는 아는 것을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현생 인류를 호모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이름 지었을 당시엔, 인류가 지금보다 더 지혜로웠을까? 아니면 인류가 부디 그러한 방향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일까? 유발 하라리가 던지는 질문처럼_물론 그는 답을 정하고 글을 시작하는 것 같지만_인류가 첫 직립보행을 시작했던 때보다 지금 더 지혜롭거나 혹은 적어도 유지하는 중일까?
Goethe's poem tells of an old sorcerer who leaves a young apprentice in charge of his workshop and gives him some chores to make things easier for himself and, using one of the sorcerer's spells, enchants a broom to fetch the water for him. But the apprentice doesn't know how to stop the broom, which relentlessly fetches more and more water, threatening to flod the workshop. In panic the apprentice cuts the enchanged broom in two with an ax, only to see each half become another broom.
.......
The lesson to the apprentice and to humanity is clear: never sommon powers you cannot control.
2023년 5월 처음으로 Chat Gpt를 사용하면서, 그 어마어마한 능력에 입을 쩍벌렸지만 동시에 오싹했다. 우선은 이렇게 편리하고 좋은 것이 공짜일리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인류가 이 편리함의 끝에 오는 부작용에도 지불해야 할 값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내 삶이 그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크게 웃으면 또 곧 크게 우는 날이 따라오곤 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돈과 권력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AI가 주는 혜택의 접근성이 좋지지 않은 계층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극심한 빈부차를 만들어낸 자본주의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인가? 빈부차는 벌어졌는지 몰라도 절대 빈곤이 줄었듯이, 절대 무지층도 줄것이다라고.
전원을 뽑으면 통화를 할 수 없는 집전화가 전부였던 때부터, 삐삐를 지나 내가 삐삐를 받고 공중전화로 모두 달려갈 때 유유히 가방을 뒤적거려 꺼내던 누군가의 시티폰, 걸고 받기가 모두 가능한 휴대폰 그리고 지금의 스마트폰까지를 나는 모두 겪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사이사이에는 이만치나 격한 감정을 경험하진 못했다. 대체로 조금 불편하던 것을 대체하는 수준이거나 원래 있는 것이지만 사이즈가 작아져 휴대가 가능했다는 수준정도였다. 하지만 AI는 나에게 유레카. 적어도 영어실력의 확장에 언제나 목마르던 나로서는 시간장소돈 구애 없이 말을 걸면 대답하고 심지어 내 문장의 오류를 잡아내어 주니 그건 정말 신세계였고 오아시스였다.
그 뒤로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상상만 했던 많은 일들이 AI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봇으로 가능해졌다. 실은 내가 지금 이걸 쓰고 있는 이 시점엔 어디까지 가능한지 알지 못한다. Chat 봇이 동영상을 제작해 준다는 것까지가 내 가장 최근 정보니까. 그래서 유발 하라리가 얘기하듯이 마법사의 수제자처럼 우리가 어떤 주체 못 할 명령 혹은 권력을 AI에게 제공하고 우리가 어떤 위험에 처할 수도 있음을 직접 느끼고 있는 바는 없다. 하지만 마법사와 수제자라는 제목의 이 우화와는 달리 현실의 우리에겐 외출에서 돌아와 우리를 도와줄 마법사도, 미래에서 돌아와 현재의 우리를 도와줄 아널드 슈왈츠 제네거도 없다는 그의 말만으로도 마음은 달리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그의 주장과 근거들을 확인하고 싶은.
The Phaethon myth and Goethe’s poem fail to provide useful advice because they misconstrue the way humans gain power. In both fables, a single human acquires enormous power, but is then corrupted by hubris and greed. The conclusion is that our flawed individual psychology makes us abuse power. What this crude analysis misses is that human power is never the outcome of individual initiative. Power always stems from cooperation between large numbers of humans.
근래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자가 중국대사관에 등장(?)했다. 그가 혼자였다면 이런 행위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믿고 있는 누군가 핼러윈에 입으려고 고이 접어둔 마블히어로 복장을 꺼내 입고 함께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발 하라리의 말에 따르면 이걸 바라보는 대부분의 대중의 생각은 안이하다.
에이 설마... 그걸 다 알고도... 그걸 다 보고도... 그걸 다 겪고도... 설마...
유발하라리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우리말 속담을 길고 유식하게, 나쁘게 말하면 장황하게 설명한다.
But why would human societies choose to entrust power to their worst members? Most Germans in 1933, for example, were not psychopaths. So why did they vote for Hitler?
마지막 문장, 'Why did they vote for Hitler?'의 'Hitler'를 대체가능한 이들이 'Hitler' 등장 이후에도 꽤나 있다. 왜 인류는 최악의 회원에게 힘을 몰아주는 선택을 하는가.
그니까 왜? 진짜 왜? 어? 어? 어?
While each individual human is typically interested in knowing the truth about themselves and the world, large networks bind members and create order by relying on fictions and fantasies. That's how we got, for example, to Nazism and Stalinism. These were exceptionally powerful networks, held together by exceptianally deluded ideas.
As George Owell famously put it,
ignorance is strength.
이 대목에서 다시 중국대사관에 나타났다는 캡틴 아메리카를 떠올린다.
언제나 그들의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
Nouns like "Facts' and adjectives like "accurate" and "truthful" becomes elusive. Such words are not taken as pointing to a common objective reality. Rather, any talk of "facts" or "truth" is bound to prompt at least some people to ask.
"Whose facts and whose truth are you referring to?"
전에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이다'라는 주제로 디베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디베이트 전의 내가 얼마나 Naive 했는지 알게 되고 역사서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평소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상대가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나는 그이가 내가 아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돕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목에서 피를 토하며 내가 아는 바를 알린다. 속으로 그와의 아름다운 재회를 꿈꾸면서.
유발 하라리는 그것은 안이한 생각이라고 꼬집으며, 그의 주장을 여러 사례로 뒷받침한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얘기를 하는 나와 당신은 우리의 생각만큼 그렇게 쉽게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을.
The populists claim that the articles you read in The New York Times or in Science are just an elitist ploy to gain power, but what you read in the Bible, the Quran, or the Vedas in absolute truth.
다단계 판매사업들이 펼치는 이론과 화려한 언변에 잠깐 속아 발을 담는 적이 있었다. 수첩을 나눠주고 이 수첩이 완성되는 날 당신도 이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에 홀린 듯 받아 적었다. 그 후 정신을 차리고 그곳을 빠져나와 돌아보니, 누가 봐도 뻔한 수익구조, 내 주머니부터 다 털려야 하는 그 수익구조가 처음엔 보이지 않았다. 무식했다. '그냥 나만 믿어'라는 말을 제일 혐오하는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대학 졸업 후 수년간 소식이 끊긴 친구를 집에서도 한참 먼 그 친구의 집 근처 커피집에서 만나 치약을 꺼내 들었던 내 모습이 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History isn't the study of the past;
it is the study of change.
History teaches us what remains the same,
what changes,
and how things change.
역사는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숱하게 많은 사건 사고들 중에 어떤 사건을 역사에 싣느냐 정하고, 그것을 성공 혹은 실패로 볼 것이냐를 정하고, 누구를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정하고, 누구를 통해 기록하고 전수할 것인가 하는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부류는 힘을 가진 자들이다. 그래서 인류는 힘을 가지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인가 보다. 그들 입장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 지금도 일본은 자기들이 저지른 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주류 세상은 그들의 입장을 받아 적고, 꾸준히 일본해 혹은 다케시마라고 표기한다.
아주 당연한 듯, 권력이 약해진 정권의 만행과 부패가 탄핵국면을 통해 서서히 벗겨지고는 있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결국은 정권교체가 되기 전엔 다 드러나기 어려운 구조라고. 그리고 사법리스크가 있는 정당대표도 정권교체를 통해 비로소 자유로워질 거라고.
멍하게 있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지만, 정신을 차리고 들으면 역사,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그것이 힘을 가진 자의 것이라는 말을 상정한 말들이라는 것이다.
나 같은 개인들은 이렇게 책 읽고, 생각을 나누고, 고작 이런 일기 같은 글을 쓰고, 투표장에 나서는 것이 최선일뿐이니, 이래서 헌법재판소에 나온 고위직 증인들이 그 알량한 권력자락을 쥐고 대롱대롱 매달리는가 싶기도 하다.
유발 하라리는 프롤로그를 통해 인간이 만든 종교가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알기 힘들어진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된 과정과 AI가 앞으로 뿌려낼 참과 거짓과는 관계없는 무분별한 정보들이 줄 전파될 위험을 방정식으로 놓고 보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결과는 생각보다 무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또한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무엇이 반복되고 있으며, 무엇을 바꿀 수 있으며,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켜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