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달리기 시작하니 안개가 날숨과 들숨을 따라 온몸에 들어왔다 나가고, 냅다 던진 미식축구공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이리 튀고 저리 튄다.
명상은 생각을 안 하려고 애쓰는 과정이 아니라, 쏟아지는 생각을 하나씩 날리는 연습이라는 것을 상기한다.
그 생각들이란 게...
여행 출발하면서 혹시 몰라 챙겨 왔던 여분의 운동화들은 나흘째가 되도록 트렁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네.
신고 있는 신발 정말 편하구나.
여기 살면 자전거로 다운타운 포틀랜드 장미공원까지 가볼 수 있을 텐데.
이 앞에 보이는 아담한 마당을 가진 집은 얼마일까?
여기는 내가 사는 곳보다 현대 기아차가 덜 보이네.
숨이 가쁘기 시작하면 생각들은 스르륵 사라지고 호흡소리만 남는다.
그래서 달리기는 명상이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문구를 담은 광고가 공익광고였는지, 기업광고였는지 헛갈리고, 전쟁통에 나무가 다 타버린 민둥산에 나무를 심느라 '식목일'까지 있는 곳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런 나무를 잘라내는 걸 보면 너무 아깝다. 하지만 여기선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나무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는 결코 저렴하지 않은 인건비를 지불하면서라도. 그도 그럴 것이 연중 딱 한 철, 찬란하게 아름다운 여름을 제외하면, 주야장천 비가 와, 꿉꿉하고 어둑어둑한 날씨에 이 아름드리나무들은 잠시 왔다가는 햇볕을 가릴 뿐만 아니라, 나무에 기생하는 해충들이 원목집들로 옮겨가 집을 망가뜨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오레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지구 나이만큼 오래된 침엽수 숲에 있는 나무들만큼은 아니지만, 강원도 대관령의 침엽수들을 이쑤시개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는 충분히 큰 나무들을 무심히 베어내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오랜 친구를 이젠 소용이 다했다고 선언하는, 당황스러운 광경을 보는 느낌이랄까.
돌아가는 길, 포근한 이불속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을 마주한다. 길에서 꼬깃꼬깃 접힌 오만 원권 지폐를 본 것처럼 신이 난다.
콜롬비아 강가에 있는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워싱턴 주와 오레건 주가 마주 보고 있다. 오늘 브런치를 먹을 워싱턴 쪽엔 최근에 지어진 값비싼 주상복합 건물들이 가득하고, 건너편 오레건 쪽에는 이동식 주택 촌이 형성되어 있다. 왜 그러한 차이가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가 만나는 'Lake Havasu'라는 곳이 있다. 이곳 역시 아름다운 호수를 사이에 두고 별 볼 것 없는 캘리포니아 쪽과 멋진 집들이 가득한 애리조나 쪽이 마주 보고 있다.
강과 호수를 사이에 둔 두 개의 주가 각기 다른 세금정책과 건축규제가 있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광경이다. 호수만 건너가면 비싼 캘리포니아 세금을 피해 갈 수 있고, 하바수라는 멋진 호수를 똑같이 누릴 수 있다면 캘리포니아 쪽에서 집을 지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하튼 강가의 고즈넉한 전경을 각자의 예산에 맞춰 누릴 수 있음이 마음에 든다. 요즘 서울에선 한강조망권을 아파트 거주민 고유의 것으로 만들려고 울타리를 치려는 시도도 있다는데 말이다.
포크라도 씹어먹을 기세의 배고픔으로 주문한 음식을 바닥까지 비워냈다.
운동은 건강한 돼지가 되기 위해 하는 거야.
워싱턴 주에 'Camas'라는 동네에 작은 다운타운으로 향한다. M의 가족이 주말에 종종 온다는 아담하지만 구경거리가 많은 오랜 동네이다.
그곳에서 작은 서점을 만났다. 나에게 서점 패티쉬가 있는 줄 아는 J는 대뜸 날더러 앞장서라며 서점 문을 연다.
과연, 서점은 하루 종일 머물고 싶게 하는 인테리어로 가득하다.
오래된 영화관에도 들어가 본다. 문을 여니 고소한 팝콘 냄새와 재래식 매표소도 보인다. 벽에는 내가 아는 옛 할리우드 배우들도 보인다. 아직도 찾는 이가 있어서 존재하는지, 존재하니 찾는 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오래된 것들이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문화가 나는 좋다.
오랜 골동품부터 새 제품들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넘치는 가게에서 발견한 수건들, 그 수건들에 적힌 문구들이 혼자라도 깔깔거리게 만든다.
I bought my husband a
"Get better soon' card.
He's not sick...
I just think he could Be Better!
집에 돌아오니 J가 나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내가 서점에서 아기자기한 굿즈와 인테리어에 한눈을 파는 사이 샀다고 했다. 지난밤에 함께 나눈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책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보라색 고양이 얼굴 책갈피는 T가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받은 3D프린터기로 만들어준 것이다.
타인과 사회에 맞춰 사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는 것이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 속옷 사이즈를 평생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 미드 'Sex and the City'에 미란다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엄마 장례식에 입기 위해 속옷을 구매하는 내용이 있다. 엄마뻘로 보이는 속옷 매장직원이 다짜고짜 탈의실로 들어와 미란다가 고른 속옷 사이즈는 맞는 것이 아니라며, 자기가 맞는 사이즈를 찾아주겠다며 서로 실랑이를 하다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점원이 맞았다. 미란다는 살면서 처음으로 몸에 딱 맞는 속옷 사이즈를 알게 되었다.
2박 3일 함께 하기로 했던 친구들과의 마지막 저녁이다.
옆집과 내 집이 데칼코마니처럼 같은 모양의 아파트에서 사는데 익숙했던 나에게, 이곳에서 만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은 꽤 뚜렷하게 여기저기서 보인다.
기성복 사이즈에 내 몸을 맞추고,
지어진 아파트에 내 기대를 맞추고,
주어진 기대에 내 꿈을 맞추고.
주는 대로 받는 것에 익숙했지.
그랬구나.
너는 그렇구나.
나는 그렇구나.
오늘 밤도 늦도록 우리들의 이야기는 멈출 줄 모르고 나는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 힌트를 끊임없이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