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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14. 2020

E08. 쵸코에몽에 건넨 진심(헬스장 썸2)


'오마이갇.'


등부터 불안했다. 보통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였기 때문이다. 배가고파 나왔다면, 할 일이 없어 나왔더라면 그 차림으로 그렇게 굳어 있었을까. 이른 겨울, 우기 옆 남자는 검정 코트에 베이비 펌 차림을 하고 있었다. 파마한 머리는 싱글벙글 거렸다. 짐작컨데, 어제나 엊그제한 머리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방실댈 수가 없다. 단지 나 때문에 돈 들인 펌은 아니길 바란다. 남자는 코트쯤 벗어 둘만 했음에도 나를 만나기 전엔 그럴 수 없다는 듯, 인사는 하고 벗겠다는 모습으로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뒷 모습을 보는데 오늘 저녁,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 지 발로 들어가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우기를 선생이 아닌, 개로 불러 보았다. 우기 이 개자식.


"안녕하세요!"

"어! 누나 왔어요?"

"앗. 안녕하세요.>//<"


뭔데 남자는 나를 보고 부끄러워했다. 애써 무시하고 나란히 앉은 둘의 맞은편 정 가운데, 내가 앉았다. 걸쳐 입고 온 외투를 벗으며 간단히 재차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우기가 자기가 엄청 좋아하는 형이랑 밥 먹자고 하더라고요. 파하하하."

"아.. 아 그래요? 엄청 좋아하는 형은 아닌 거 같은데. 하하."

"ㅋㅋㅋㅋ둘이 왜 이렇게 어색해요.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같이 밥 먹고 싶었어요. 재미있을 거 같아서요! 이모! 여기 삼겹살 3인분이랑 소주 하나요! 누나 맥주 먹을래요?"

"네! 맥주 좋아요."

"이모 맥주 한 병도 추가요!"


술이 고기에 앞서 도착하고, 맥주 한 잔과 소주 한 잔, 그리고 소맥 한 잔을 말아 각자의 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짠 부터 외쳤다.


"반갑습니다."

"많이 드세요. 제가 사는 거에요."

"정말요? 오예. 많이 먹어야지ㅋㅋ"

"ㅋㅋㅋ형 제가 살게요. 누나 많이 먹어요!"


내가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사이 우기는 소주 두 잔을, 우기의 좋은 형은 소맥 2잔을 들이켰다. 벌컥벌컥. 좀 급하다,싶을 만큼 빨리 마셨다. 빠르게 취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 친구 이름은 DS, 나와 같은 헬스장에 다니고 있고, 우기의 PT회원이며, 직장 다니며 상당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 아무튼 보기드문 청년이었다. 투잡 뛰느라 하루 3-4시간 잔다고 했다. 부모님 대신하는 동생 뒷바라지로 젊어 고생중이라고. 나이는 우기보다 3살이 많아 나보다야 2어렸던 걸로 기억난다. 나는 또 누나가 되었다. 들을수록 나는 겸손해져, 고기가 넘어가질 않았다. 그런 그 애가 수면 5시간을 줄여가며 벌어 오는 월급을, 내가 이렇게 생각없이 먹어도 되나. 자리는 생각보다 진지했는데, DS는 곧 취해버렸다.



"2차 가요 2차!"


만취 전, 9,999 취한 DS가 말했다. 누나가 고기까지 얻어먹고 하는 토낌,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2차는 내가 사는 걸로 하고 근처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쓸데 없 프라이빗한 룸을 우리 셋에게 내어 주었다. 10,000원을 더 내야 한다고 했는데, 누나 가오가 있어 퍼블릭 룸으로 바꿔달라 하지 못했다. 사방이 막혀 룸은 따뜻했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오자 알콜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나 보다. DS가 퍼졌다. 1차에서 상당히 보수적으로 마신 나와 주량이 소주 5병인 우기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만 마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3%)ㅆ꺼ㅣㅇㄸ찌ㄸㄹ%1 아뉘에요. 갠찬아요."


먹는 둥, 마는 둥, 의자에 녹아있던 DS를 제치고 우기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은 집에 가고싶다,를 외쳤다. 우기한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어 잠깐만." 우기가 가고 쓸데 없이 프라이빗한 룸에 나와 DS, 둘이 남았다.


어색한 기운을 가리려 용을 썼다. 운동 원래 좋아했어요? 언제부터 다닌 거에요? 하하 그래요? 그런데 이 눈치없는 자식이 내 말을 막아섰다.


"누나. 오늘 제가 만든 자리에요. 제가 우기한테 부탁했어요. 누나랑 밥 먹게 해달라고요."


진짜 몰랐다. 얼마나 몰랐냐면 난 헬스장에서 DS를 본 기억이 없다. 같은 헬스장, 같은 시간대 운동한다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다. 반면 는 헬스장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우기의 회원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모든 게 일사천리였던 것 같다. 우기새키. 응큼한 우기새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상 못한 직구에 "아 그랬어요. 하하. 고마워요!" 머쩍은 웃음과 감사의 인사를 내보였다. 더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예쁘게 봐주어 고맙고, 또 고마웠다. 타이밍 한 번 기막히게 우기가 들어왔다. 나는 이제 가자, 말했다. 많이 취했다고. 가야겠다고.



이자카야 밖은 추웠다. 서둘러 인사 마치고 집에 가려는 데 DS가 우리를 막아세웠다.


"잠시만요!"


재빨리 편의점에 들어 가더니 나오는 손엔 쵸코에몽이 들려있었다. 쵸코우유는 쵸코에몽이 진리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다. 똑같이 세개를 사와 하나를 우기에게, 그리고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누나 이거 드세요."

"고마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달달한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로 마무리 됩니다. 또 놀러와 주실꺼죵?+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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