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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24. 2020

E13. 똥 싼 거 아니거든요?


어깆 어깆,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한 발, 또 한 발. 조심성이란 없는 내가 걸음걸이마다 이렇게 조심스러울 수 없다. 조금 섣부르거나 약간 잘못 딛기라도 하면, 큰 일이다. 조금 난감한 순간은 아침 출근길이다. 빠르게 치고 빠져야 하는 승하차 타임. 뒷 사람에게 기다림이란 없게, 기사님 언제 내릴지 모를 나만 쳐다보는 일 없게 후닥닥 처리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한 계단에 왼발과 오른발이 필요하고, 또 한 계단에 왼발과 오른발을 딛어야 한다. 이런 나는 민폐다.


포경수술 막 마친 사내아이 모습이 내게 보인다.

소중한 어디가 허벅지에 쓸릴까 겁이나는 걸음새다. 이번을 통해 그들 고통을 십분 배운다. 얼마나 아팠던 걸까. 놀림거리 삼았던 택이에게 다소 미안하다. 그리고 미안함에 그친다. 나는 꼬추가 없어 포경수술의 기회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의심은, 지렸어?


아니다. 그런 거 아니다. 나는 지리지 않았다. 어제 한 하체 운동으로 다리가 털렸을 뿐이다.(*털리다 : 더는 남은 에너지가 없을 만큼 탈탈 털리다.)


하체가 달아났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야아야하다. 뭔데 이 통증은 걷기조차 힘들 게 하는지. 반면 변태같은 미소가 번진다. 근육통이 내게 말하는 건, 어제 제대로 운동했다는 거기 때문이다. 어제 한 그라운드 스쾃이 제대로 먹다. 그런 나를 사람들 알리없다. 율동 대신 운동을 한 나를, 알 수 없다.




운동하는 사람에게 있어 근육통은 일종의 신호와 같다. 어제 집중해 운동했다, 핑계란 없었다, 자극 잘 줬다, 잘 했다,를 알려온다. 통(痛)은 통(痛)이니 아픔으로부터 피할 도리는 없지만, 만날 때 마다 반갑다. "어제 운동 좀 했나봐?" 처럼, 나의 어제를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근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통증이기도 하다. 운동하는 사람은 안다. 땀나지 않고야 성장할 수 없음을. 자극 없는 운동을 두려워 하는 이유겠다. 때문에 무게 치며 더 큰 무게로 힘들길 원하고, 자극 없는 움직임에 또 다른 자세를 취해보고 힘듦을 즐긴다. 변태 같은 성향은 달리 나오는 게 아니라, 이것에 있다. No pain + No gain. 고로 바지에 똥 싼 거 아니냐는 의심이 반응 없는 근육보다야 백만배 낫다. 요 몇주 인사 없더니, 오늘에야 만난 근육통에 흠씬 반갑다.



달아난 하체 때문에 오늘 하체 운동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살아남은 부위를 찾아 헤맨다. 어디보니, 아직 어깨가 멀쩡하다. 어깨를 털기로 한다. 가볍게 밀리터리 프레스로 시작해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로 마무리 한다. 나는 좀 값진 집중을 했나보다. 근육통 찾아 와 어깨를 들 수 없다. 가장 높게 들어 올린 팔은 귀 옆에서 멈췄다. 또 한 번의 눈초리가 내게 쏟아진다.


"오십견 왔니?"


이제 서른 하고도 둘에, 오십견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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