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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24. 2020

#9. 주말 출장


하는 일의 특성상 주말을 출장으로 보내야 할 때가 있다.

정확히는 출장은 가야 하지만, 재수 좋으면 주중이고 운 나쁘면 주말인 거다. 그렇게 해서 일 년 다섯 번 정도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낀 출장이다.


스케쥴 미리 정해지는 건 아니고 상당히 유동적으로 흘러간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닌 거다. 끝은 금요일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바라는 마음에 월요일 아침부터 기도를 올린다.


‘하느님 아부지, 부처님, 알라신, 삼신 할매, 돌아가신 할아버지요. 제발 주말은 피하게 해주소서.’


주말에 가는 출장이라고 쥐어 받는 출장비 달라지지도 않거니와, 이번 주말엔. 데이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루고 벼르던 날. 같이 보고 싶던 공연이 있어 더 그랬다. “그 공연 너무 보고 싶었어!” 예매 시작과 동시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번 달 월급, 텅장이 되더라도 반드시 두 자리는 사수하겠다는 이 악물음이었다. 우선 고르고 골라 가장 날 좋은 날, 왠지 그 날, 공연비 오십만 원이 아깝지 않을 것만 같던 날부터 찾았다. 그렇게 달력 한 구석 ‘예매’ 표시까지 해두고 오전 11시만을 기다려 클릭. 옳다꾸나야! 두 좌석 확보에 성공했다는 기쁨 공유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렇게 뭐만 했다하면 엊그제 같은 데. 당연히 갈 수 있을 줄로만 알았던 주말 데이트, 공연 관람이 무산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확률이었다.

가게 될 확률, 피하게 될 확률.


“죄송하지만 주말에 공연 데이트가 있으니 출장은 없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기엔 공연은 회사에서 보여주는 거란 말이야. 월급 없이는 막다른 수가 없었던 까닭에 출장 일정에 맞춘 주말 데이트는, 그저 따라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까라면 까야지 뭐.


직장인에게 데이트란 일주일 한 번 있는 주간 행사와 다름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길은 평범한 날들의 연속일 뿐이다. 직장 갈 때 입는 옷 위아래 합쳐 5만 원 이상 쓰는 거 아니라는 모 선배의 말처럼, 어제 입던 바지 내일 입고, 오늘 입던 바지 내일모레 돌려 입는 바지깡처럼. 대충 걸쳐 입어도 단정하기만 하면 그뿐 아니더냐는 (부)수수한모습의 나. 그런 내가 토요일만 되면 변했다. 행사 맞이 환골탈태하는 날, 가장 예쁜 내가 되는 날. 이런 내 모습도 있었냐며 나조차 놀라게 되는 날. 역시 여자는 꾸며야 된다고 입 한 모금 벌려 마스카라 칠하고 있는 내게 건네던 말. 뭐라도 하나 더 발라 0.1만큼이라도 더 사랑스러워 보이고 싶은 날. 주중은 오늘을 위해 버텼을 뿐이었는데, 이번 주간 행사는 공쳤다.


“미안해, 내일 못 볼 거 같아.”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설움이었다. 데이트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월화수목금 한 주를 기다려 하루를 만나면서 이번엔 월화수목금x2를 보내야 하는 이유로 침울해졌다.


먹고살기가 뭔지.

분명 삶의 메인은 “행복합시다. 그리고 사랑합시다.” 임에도 행복도 사랑도 밥 앞에선 속절없이 포기 되어야 하는 건지. ‘아아, 주 5일 열심히 일하다가 하루 데이트 하겠다는 데. 이마저도 가져다 달아나시나요.’ 투덜거림도 잠시, 어느새 주말 출장길에 올라있었다. 존버나 해야지.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지키지 못하게 만들 때 마다 불쑥불쑥 회의감이 찾아온다.

아마 인생 제1의 목적은 밥 먹기가 아니라 그런 거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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