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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25. 2020

#10.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아빠는 막내 출신이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 동생을 더 아끼는 건. 꼴랑 둘뿐인 자매사이지만, 어찌됐건 나는 맏이, 동생은 막내니까 말이다. “막내가 얼마나 서럽겠니.” 그렇게 별것도 아닌 일로 동생 두둔하는 아빠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대대손손 이어오는 막내설움이 있나 싶었다.

우리 동생은 말했다.


“언니가 유전자 몰빵 해 갔잖아. 좋은 건 지가 다 가져가고 남은 게 나한테 왔어.”


단지 동생이 가지고 싶던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파렴치한이 되어버렸다. 억울한 내 앞에, 동생은 억울하다 했다.


물론 동생이 내 다음이라 딱했던 것도 있었는데, 모든 물림이었다는 거다.

엄마는 나를 살뜰하게도 키웠다.

잘은 몰라도 첫째 아이라는 것, 엄마가 처음이라는 것, “잘 키워보자! 아즈아!”와 같은 누구보다 강한 욕심과 의지가 있던 때라 그랬을 거다. 그래서였겠다. 첫째인 나는 웬만한 사랑과 관심을 독식하며 자랐다. 나눌 것 없었기에 독식할 수 있었던 때와 달리 2년 뒤에도. 둘째 딸이 태어나고도 독식은 계속되었다. 나와는 다른 양육이 둘째에게 적용됐다. 나를 키워보며 이정도 돌봄은 필요 없겠다 싶은 앎이 있었을 테다. 해보니 소용없는 일이더라, 혹은 효율이 떨어지는 방법 이더라와 같은. 덜 열심히 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주의성이 덜 했던건 맞는 거 같다.


동생은 나를 따라 하기 아니면, 나로부터 물려받기가 일상이 되었다.

언니가 해봐서 좋은 거면 동생도 했고, 내가 자라 더 이상 쓸모없어진 옷이면 모두 동생의 차지가 되었다. 그 버릇은 지금도 못 고치고 “야. 너 이거 입을래? 나 안 입어.”


어느 날은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첫째에게 주어진 특별 배려에 더는 참을 수 없었나 보다. 그리고 그때. 우는 동생을 보고 내가 했던 말, “뭘 그런 거 가지고 울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동생의 행동이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울고 난리래. 하여튼 막내 똥고집하고는. 맏이의 삶에 막내 닭똥 같은 눈물의 의미를 알 길 없었다.

그리고 영영 모를 것만 같던 그 설움을, 입사하고 알게 되었다.


막내는 ‘그래도 되는’ 존재였다.

‘네가 하지 누가하니?’

‘이런 건 다 막내가 하는 거야.’


무엇보다 곤욕스럽던 ‘그래도 되는’중 ‘되는’은, 스무 살도 훌쩍 넘어, 4년의 학사과정까지 마친, 이제 곧 시집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나를 대하는 유치원생 다룸이었다.


“이렇게 하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다그치는 그녀 앞에 내 대답 “잘못해쯈미다.” 한 마디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유치원 입학한 건지, 회사에 입사한지, 여긴 누구 나는 어디. 작은 실수 하나에도 쥐 몰이하는 회계반 선생님 앞에 나는 꼼짝없이 4살이 되어버렸다.


막내라고 감정이 다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도 마상이라는 걸 받는 사원이고, 이왕이면 존중 받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이런 기본 중 기본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내에겐 그래도 된다,’는 이상한 분위기가 사회생활에선 만연한 듯. 약자에겐 거를 것 없는 가장 날 것의 본인을, 강자에겐 가식에 가식을 더한 가짜의 당신을 보여주던 그곳. 일과 씨름하기에도 바쁜 그곳에, 소모되는 감정으로 너덜대지 않을 날 없었다. 아빠가 그렇게 아끼던 막내. 고기를 먹어도 한 점 먼저 먹여주고, 용돈을 줘도 몇 만원 더 쥐어 받는 막내.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유독 아픈 손가락 있다면 새끼손가락이라는. 그런 막내가 좋은 건 줄로 알았다.


어쩌다 보니 막내를 벗어났다.

막내를 벗어나게 해준 후배가 나에게도 생긴 거다. 그리고 어느 날, 후배가 말했다.


“언니, 어떻게 버텼어요? 대단해요. 빨리 서른 살 되고 싶어요. 어리다는 건 좋은 게 아닌 거 같아요.”


어떻게 버텼는지 이미 잊어버린 까닭에, “그러게”한 마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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