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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27. 2020

#12. ㅇㅇ씨


사원시절 선배들 나를 부르던 호칭은 “ㅇㅇ씨”였다.

직위는 사원이었지만 불리는 건 사원님 대신 ㅇㅇ씨. 많이도 불려 다녔다. 기간대비 가장 많은 “씨”를 듣고 살았던 인생 순간이다.


“쟈스민씨, 잠깐 이리 와볼래?”

“쟈스민씨, 이거 확인 좀 해봐.”

“쟈스민씨.”

“쟈스민씨!”

“쟈스민씨이!”


“야” 혹은 “어이”라 불리는 것보다야 훨 낫다 싶지만, 들리는 “씨”에는 어딘가 차가움과 냉혹함이 있었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쟈스민씨”라 칭하는 누군가의 부름에 나도 모를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건.


먹고 살기 위해 모인 집단에 따뜻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 업무를 위해 오라고 했고, 모자람이 있을 땐 혼이 났고, 필요할 때 찾기 위해 불렀다. 일하러 간 곳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왜 이렇게 서운이 하지. 불러 세워 따뜻한 인사 한 마디 듣기가 가뭄에 콩 나듯해서 그랬으려나.

다른 것 보다 ㅇㅇ씨가 미웠던 건 나를 약자삼아 버린 업체 사람 때문이었다. ㅇㅇ씨라는 호칭에는 이런 연관성이 있었다. ‘사원이겠구나, 그 회사 막내이겠지, 코찔찔이 신입일수도.’ 약삭빠른 더듬이질로 캐치해 버린 업체 모 차장 덕분에 곤욕을 치루었다.


“이거 이렇게 처리 하겠습니다?”


우리 회사를 대신해 내렸어야 하는 주문을, 업체 차장이 낚아채갔다. 지금 생각하면 ‘아저씨가 뭔데 그래요?’ 한 소리각이지만, 더 어이없던 건 어버버 댔던 나다. 아저씨 기 싸움에 져버렸다. 불리는 직위가 있었다면 상황에 반전이 있을 거 같았다. 차장이나 부장까진 바라지도 않아. 어쨌거나 뭐라도 하나 달아주면 사원대하는 이 무시는 수그러들 것 같았는데, 젠장. 그리고 그 무렵 깨달았던 건, 불리는 것에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내 안에도 작은 능구렁이 한 마리가 들어섰다.


“부장님께 먼저 여쭙고 말씀드릴게요.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요.”


일면식도 없는 부장님 이야기에, 업체 직원 당황해서는 “알겠습니다.” 한 마디로 일단락 짓게 되었다. 꼼짝없이 당할 뻔 했는데 부장이라는 호칭 덕에 살았다. 어느 회사 꽤 높은 직위로 불리운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딱히 불릴 게 없어 아무렇게나 불리기 쉽던 사원. 그때를 생각하며 보내는 메일에 주의를 기울인다.

- 주식회사 카카오브런치맛있어 / 팬케잌 사원님

나라도 어디 회사 “사원”인 “님”을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에 보내게 되는 말.

나에게 ㅇㅇ씨는 어딘가 그런 호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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