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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31. 2020

#14. 가성비 갑대리


가성비란 가격대비 성능으로, 소비자 혹은 고객이 지불한 가격에 비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능이 소비자나 고객에게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 나타내는 말이다.


예전에 회사 경영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직원 한 명 교육시켜 그 비용 회수하는 데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 줄 아십니까? 자그마치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앞으로 비용 회수만 기대되는 사람, 대리. 대리가 왜 가성비 갑이라고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사원이던 때, 가장 유능해 보이던 사람은 대리였다.


‘와. 어떻게 그것까지 다 알고 있지?’


약간은 경이롭기까지 하던 모 대리. 일은 제일 많이 하면서 또 제일 잘해. 농이 익었다고도 하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 설익은 상태지만 파릇파릇함이 그 자체로 싱그러운 사원도, 또 때를 지나 어딘가 물러버려 멍든 과장도 아니었다. 제 알맞게 적당히 익어 가장 신선하면서 최고로 맛이 좋은, 대리가 최상품이었다.


“여러분, 여기 갓대리를 소개 합니다!

아는 것은 적당히 많거니와 회사 굴러가는 시나리오 전반을 꿰고 있고요! 사원과 과장 사이 적절히 다룰 줄도, 그만한 눈치도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진급과 동시에 약간의 재량까지 갖추게 되었죠. 쭈그려 있기 대신 약간의 기를 펴게 된,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가 기대되는 대리입니다. 얼른 모셔 가세요!”


광고 1분도 안 되어 매진각이다.


일다운 일이라는 것의 비중은 죄다 대리에게 맡겨지는 듯 했다. 모든 업무를 아우를 수 있는 게 대리였으니까. 인턴이나 사원에게는 시킬 수 없는 일, 과장부터 부장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죄다 대리에게 갔다. 심지어는 차장이 놓치고 있던 일을 대리에게 묻기도 했다. “야, 그거 어떻게 됐냐?” 그런 대리가 안쓰럽던 때도 있었는데, 휴가 갔을 때가 그랬다.


“지금 모 대리 휴가 갔거든요. 오면 처리 할 거에요.”


휴가 간 대리를 대신해 인수인계 받은 사람이 대신 해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꼼짝없이 기다리라고만. 모 대리 오면, 모 대리가 처리 할 거라고, 모 대리 올 때 까지 조금만 참고, 모 대리를 기다리라고. 대리 없으면 회사 굴러가긴 하는 걸까 싶은 의문마저 들 때쯤. 그렇게 며칠 동안 쌓여간 대리님 책상 위엔 서류만 한 가득이었다.


“대리한테 월급 제일 많이 줘야하는 거 아니야?”


그럼에도 모니터 틈으로 소설만 보던 부장이, 개인 동호회 활동만 하던 임원이, 주식에 정신 혼미해있던 누구에게 더 많은 소득이 돌아갔다. 급여는 책임의 무게라는 말에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잘못은 차상위자에게 떠밀어내기 바빴기 때문. 그럼 왜 때문에 월급은 많이 받는 거죠, 가성비는 꽝 중에 꽝이면서. 사장님 진정 모르시는 건가요? 한 번씩 현타가 오는 순간이었다. 이런 사람을 상사로 모시고 있다니. 이곳에 오려 친구들과 경쟁하며 그리도 발버둥 쳤던가. 오호통재구만!


하여튼 지불한 월급에 비해 그 성능이 월등한 가성비 갑대리다.


나 또한 갑대리 반열에 올라서고,

그렇게

소정의 월급 인상과 함께 뽕을 뽑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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