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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28. 2020

#13. 드디어 진급!

흥이난다 흥이나

회사에서는 연말 결산 그리고 연초 예산 회의 일정에 맞추어 진급자를 선정, 발표 했는데, 올해는 기대해 볼만한 짬이 되었다. 몸담고 있던 직종은 제법 보수적이라 유달리 튀는 자나 독보적인 직원에게 특별 진급 케이스를 부여하는 일은 제로에 가까웠다. 유교사상이 녹아있는 업종이랄까. 나이 많은 사람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먼저 진급해서는 안 되는, 먼저 입사한 직원보다 나중에 입사한 직원이 더 빨리 승진하기는 어려운, 능력보다는 연륜을 중요하시던 곳이었다.


그래서 안심이던 건 차례가 되었다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입사한 사람 모두는 작년 진급을 마친 상태고, 이번 진급이 무산되면 뒷사람과 족보 꼬일 게 분명하니, 아마도 진급이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나 문제는 “혹시나”다.

“혹시나”가 발목 붙잡기 시작했다.


“혹시 진급 무산되면 어떡하지?”


지난 시간, 근무하여 농땡이 피우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할 일 제쳐두고 단톡방에서 수다 떨던 일, 퇴사를 꿈꾸며 몰래몰래 공부하던 날, 외근 나간다는 핑계로 들른 커피숍 아메리카노 한 잔. 상사 욕으로 열내던 때도 스쳐갔다. 출근하기 싫었던 마음, 회사가 원망스러웠던 감정도 모두. 뭐 이리 찔리는 게 많은 건지. 진급을 못해도 할 말 없겠다 싶은 일들만 가득했다. 이제와 바랐던 건 아무도 모르기를. 월급 루팡해 갔던 시간도, 동료와 신나게 떠들던 상사 뒷담화도, 애사심이란 없던 나도. 나만의 사적인 영역으로 남아주기를. 어쨌거나 진급하기를!


그리고 사내 메일이 왔다.

연간 수고했다는 내용과 함께 내년 진급자 명단을 싣고서.


- 김차장 : 부장 진

- 박대리 : 차장 진

- 쟈스민 : 대리 진


이얏호! 드디어 진급이다!

그럴 줄로는 알았지만 설마 하는 생각에 마음 졸였던 찰나. 아무튼 승진이다!

진급이 좋았던 데는 단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는 월급 인상, 둘째는 ㅇㅇ씨 말고 ㅇ대리라고 불릴 수 있는 직위가 주어진 것. 거창할 것도 없이 딱 둘, 그 뿐이었다.


월급이 올랐다.

매년 한 단계씩 오르던 호봉, 진급을 계기로 몇 계단 껑충 인거다. 이 월급이면 작지만 소중한 적금 하나를 더 부을 수 있었다. 포부는 억조 단위이라 0 다섯 개에 ‘그거 얼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은 굽신굽신 그저 감사하습지요. 물론 첫 월급은 진급턱으로 물 새듯 흘러나가겠지만. 어쨌거나 정부에 드릴 세금 다 떼고도 몇 십만 원의 추가 소득이 생겨난다는 사실에 들었던 첫 느낌은, 공돈 생겼다! 실감나지 않는 소득의 증가였다. 물론 몇 달 지나지 않아 올라간 호봉에 익숙해지고 내뱉은 말은 “월급이 참 아기자기 하구나.”


연봉으로 취급받는 서울 이곳에서의 내 위치가 업그레이드 된 느낌도 받았다.


“연봉 얼마야?”

“나? 풋. 이만큼은 받아.”


벌이=가치라는 이상한 공식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세상에, 올라간 월급이 어깨 뽕 한 겹을 만들어 주었다. 한 달에 더 받는 몇 십만 원, 이게 뭐라고 나를 치켜세우는 건지.


그런 반면 업체에서는 여전히 “ㅇㅇ씨”를 찾아 헤맸다. 그런 사람 더는 없는데.


“저 진급했으니 대리로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외치고 싶은 내 마음 들키기라도 한 건지, 옆에 있던 선배 내 대신 한 마디 건네주었다.


“쟈스민씨 이번에 대리 진급했어요.”


그래! 나 드디어 대리라고! 이제 날 대리취급 해달라고!

드디어라고 할 수 있던 건, 참고 버티며 인내했던 시간이 있어서니까.



새로 판 명함을 건네받았다.

달라진 건 이름 뒤 붙게 된 새로운 직위, “대리” 하나였지만 뿌리고 싶은 안달이 나는 건 뭐람.


“오다 주웠어. 명함이야. 한 장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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