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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26. 2020

#11. 같은 술 다른 맛


아빠는 술을 잘 마시다 못해 좋아했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알지 못했던 자기 능력을 배우게 되었다. 주력(酒力). 그냥 두 분 다 해독 능력이 좋다는 말이다.


덕분에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능력을 물려받았다.

어디가 알콜 쓰레기 소리는 들어 본 일도 없거니와, 술 한 잔에 홍조 띈 얼굴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잘’도 아니지만, ‘못’도 아닌 음주실력을 가지고 있는 나.


비슷한 능력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은 술 한 잔, 이 시간을 좋아한다는 거다. 누구는 맥주 한 모금에 오는 피곤함이 괴로워 술자리가 싫다고 했다. 또 누구는 벌개 질 얼굴이 흉해 기피한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그들에게 벌어지고 있었고,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가 여기에 있었다.


“수고했어! 짠!”


기쁨에는 한 짠이 빠질 수 없다고, 삼겹살에도, 파스타에도, 치킨에도 소주가, 와인이, 맥주가 함께다. 여하튼. 우리 같은 흥부자에게 술 한 잔은 빼놓을 수 없는 인생 즐거움이겠다. 넘어가는 잔 마다 달라지는 기분도, 또 한 재미겠고. 맥주 한 꿀꺽에 취기 살살 오르더니 두 꿀꺽엔 알딸딸함이, 세 꿀꺽에 세상을 가졌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 언제라도 확실할 것만 같던 그 순간에 예외가 생겼다.


회식 날이었다. 모처럼 직원들 한 자리에 모였다. 정 가운데 말고 맨 끝자리, 입사하고부터 구석진 어디가가 좋아져 귀퉁이만 찾아 헤맸는데. 헐. 사장님 주변으로 앉으래. 저 앉기 불편하다고 우리더러 앉으라는 꼴 시스루처럼 훤히 보였지만 별 수는 없어 쭈뼛대다 상석에 앉게 되었다. 이어 사장님의 건배사가 있고난 후. 선배들은 좌우 하나씩 택해 고개를 돌리고는 들이켰다. 따라 찾기 시작했다. 어디로 돌려 한 손 가리고 마셔야 할지. 문제는 좌우 고개를 돌려봐도 좌대리, 우사장, 나보다 윗사람이라는 거. 어느 곳 하나 택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봐야 한 계급 위인 대리 쪽으로 고개 돌려 반의 반잔 마셔 잔을 내려놓았다. 인생에 꺾어 마심이란 없는 앞자리 차장님, 질문이 이어졌다.


“쟈스민씨는 술 안 좋아 하나 봐요.”

“아 넵. 술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술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야 마시지요 선배님. 그래도 참다운 회사였던 건, 강요는 없었다. 다만 주시는 술 기꺼운 마음으로 마셔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의 부담만 작용했는데, 어떡해. 도통 들어가질 않는 걸. 마시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차디 찬 냉장고에 있던 탓에 상온에 이슬 맺혀버린 맥주도, 내가 아는 그 맛, 다를 바 없이 청량할 게 빤함에도 도무지 마시고 싶지 않은 걸. 당최 술이란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 한 템포 릴랙스 하는 마음으로 마셔야 하는 건데, 이곳에서 사원인 나는 여전히 총기 가득해야 하고 흐려져선 안 되는 걸. 아니, 안 될 것만 같은 걸. 혀라도 꼬일까, 시원하게 들이키면 보기 좋다고 한 잔이라도 더 말아주실까 염려되는 바람에 종교는 없지만 술은 멀리하는 척, 그렇게 조신한 척만.


“아유. 한 잔 할 거 같은데 의외네.”

“하핫. 넵.”


옆에 있던 상무님 한 마디 거들었다.


“면접 볼 때 한 병은 마신다며? 다 거짓말이었어? 하하.”

“넵. 왠지 한 병은 마셔야 면접 통과할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하하하.”


거짓 아닌데. 사실을 거짓이라고 거짓을 고했다. 그렇게 맥주 잔 한 잔을 두고 회식시간 2시간을 버텼다. 반 잔, 반의 반잔, 반의 반 반잔. 커피 마시듯 홀짝 홀짝이고는 드디어 퇴근이다.


그리고 며칠 뒤 금요일.


“이번 주도 수고했어! 짠!”


불타는 금요일, 그냥 보내긴 오늘이 허전해 친구들과 모여 잔 부딪히기를. 캬. 그래 이 맛이지. 같은 술에서 다른 맛이 나는 건, 느낌적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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