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시도

20201028 수요일기

by 손은경

2020. 10. 28. 수요.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늘만 같아 다오"스러운 한 가을의 쾌청함



지난 월요.

수요를 위해 휴가원을 제출했다.

월요 출근길부터 벼르던 일이었다. 따라서 출근하자마자 한 일이 "휴가원" 작성하는 일이었고, 그리고 기다리던 수요가 왔다. 휴가(leave)다.


곁에 둔 것으로부터 떠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다시금 벼르었더랬다.

이런 날이 내게 필요했고, 이 날을 맞이하지 않으면 언젠가 몸이나 머리, 마음중 어딘가에 빵꾸가 나 버릴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요 아침부터 되뇌었다.


"나 오늘 아무것도 안 할거야! 휴가니까! 완전 아무것도 안함! totally have fun!"


오전 9시 30분쯤 눈 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이불 펴 자리에 다시 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중 하나는 일단 몸을 쓰지 않는 거였다. 그리곤 반드시 하리라,다짐했던 맛있는 녀석들 4편도 연달아 볼 참이었다. 그리하여 미리 다운받아 두었다. 도리토스 치즈맛도 어제 준비해 두었다. 펜트리에서 과자 한 봉 꺼내 침대 옆에 두고, 아그작바그작 거리며 욤욤대고 씹으며 파하하하>_< 거리는 시간을 지난 월요부터 꿈꿨던 나의 철저한 시나리오였다.


쓰기도 오늘은 멈추자,했다.

"쓰는 일"이라면 새벽도 꼴딱 지새워 버리는 잠 많은 나이지만, 요즘은 어쩐지. 쓰는 일도 일 같이 느껴져 한 템포(라고 해봐야 하루겠지만) 쉬어가자는 심사였다. 때문에 브런치와 한글 문서는 손도 대지 않았다. 작정한 날이었다. 지금와 생각컨데, 배출(쓰기)을 멈추고 흡수(시청)를 하는 게 내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었나 보다.


맛있는 녀석들을 보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벼룬 나의 수요가,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을 더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니 오후 1시쯤 되었고, 열어보니 카톡 몇개가 와있었다.

내가 휴가인 것(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의 연락이었다.

협력사 직원으로부터의 카톡 한 개와, 글쓰기 수업 받는 학생의 카톡과, 오픈 채팅방 사람들과, 가족 톡방이 그랬다. 나는 해야 하는 답장과 하지 않아도 되는 답장으로 나누어 "의무"가 존재하는 메세지에만 답 하기로 했다. 해야 하는 답장은 일정 '댓가'를 선불로 받은 집단의 카톡이었다. 업무 연락과 글 수업 연락이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시도보다 그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거나 앞서 있다. 때문에 아주 잠시만. 살짝만 노트북을 달구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도전을 해하지 않을 정도의 몹시도 소극적인 시간만 쓰고자 이마저 다짐 하고, 책상에 앉았다.


일 처리 하고 피드백 주고 나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다.

이 같은 시간 흘러있음을 "정신 차린 후에야" 알게 된 걸 보니, 나는 집중을 했나 보다. 설렁설렁은 노트북 켠 순간 달아났다. 그러더니 고프지 않던 배가 고파져 지난 저녁 먹고 남은 부대찌개 뎁혀 끼니를 때웠다. 밥도 없이 국물만 호로록,삼키고 다시 무엇도 하지 않을 것을 벼르었다. 아직 휴가는 현재 진행중이니까.




새로운 나를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중 하나가, 내게는 공부하는 시간이었나.

요즘 새로 시작한 언어 공부가 '지금' 하고 싶어져 다시 책상에 앉았다. 즐기는 시간이기에 이것은 휴가의 일부와 마찬가지였나 보다. 책을 펴 혼자 샬라샬라 댔다. 문장을 만들고 단어를 외우다 이내 지쳐, 남겨둔 맛있는 녀석들을 보러 자리를 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로 되돌렸으나, 길지는 못했다.


신생아도 아닌 게 시간 대부분을 누워있자니,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되도 않는 요리를 하게 된다. 냉장고를 파 김과 단무지와 참치와 마요, 햄을 꺼내 참치김밥을 짓기 시작했고, 저녁에 먹을 오리고기까지 굽는 나를 발견했다. 장장 2시간에 걸친 요리였다. 라면이랑 김치 볶음밥 밖에 할줄 모르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요리를 하고 있었다. 좀 알 수 없는 나였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가, 내가 버틸 수 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최대치였다.

늘 무엇을 하거나, 배우거나, 쌓거나, 소통을 통해 마음을 나누거나, 접속하는 나여서, 쓰지 않거나 일을 멈추거나 소통을 중단하는 모든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이라 여겼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벼르어 시도했다. 그러나 나는 그 외 무엇이라도 하고 있었고, 시도의 결론은 실패다.


허나 무엇을 하기 원할 때 무엇을 했다는 점에서, 수요 전날인 화요와는 또 다른 하루를 보냈다.

어쩐지 상쾌한 수요 다음날인, 목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