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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06. 2020

$1. 동학개미가 된 건

미가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다들 적금 안 붓고 용돈으로 남겨둔 돈 있지? 세모전자 사라. 완전 저가다.”


나로부터 반경 5m도 되지 않는 곳에 있던 여왕개미의 외침이었다.

여왕개미는 주식 경력자다. 투자 생활 10년차쯤에, 따로 연락하는 펀드 매니져도 있고, 심지어 근방에 소식통까지 있는 사람이다. 주워듣기로 여왕은, 억대 자산을 주식운용에 쓰고 있는 걸로 안다. 주변에 보기 드문 화려한 투자자인데, 사실 고위험-고수익을 몸소 실천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어쩐지 염려 가득이었다. 주식은 내게 그런 거였다. 흠좀무(서워). 그리고 그 길을 여왕이 가고 있다 하니, 부디 수익 나시어 징징 짜는 일은 없기만, 후배로서 바랐다. 나는 적금을 하나 더 추가했다.


우리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왕은 추천 한 번을 안했던 사람이다.

추천이라는 게, 호언장담이라는 게, 건네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불편한 일임을 안다. 둘에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믿으라는 자와 믿겠다는 자 사이 마음 공식이랄까. 고로 함부로 던지지 않고 넙죽 받아먹지도 않는 게 우리 약속이다.


여왕이라고 모르지 않았겠다. 나와 그의 백만 원이 같을 리 없다는 걸, 반드시 알았을 테다. 나는 아직, 젊어 고생쯤이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몸뚱어리를 담보로 사는 중이다. 단 돈 만원 차이로 미용실 바꿔 다니기도 하고, 오렌지 쥬스 대신 적당히 나는 오렌지 향의 음료를 찾아 마시기도 한다. 펑펑은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와이파이 사용할 때나 쓰는 말이다. 그리고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내 옆과 앞이다. 공공연한 사실을 나를 고용해 쓰고 있는 여왕이 모를리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하는 세모전자 추천은 아주 의외였다. 주식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작은 손해도 나에겐 피해다.



몇은 묻고.


“확실합니까? 하하.”


나는 관심 없는 척, 귀는 열되 입을 닫았다. 여왕은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 이만큼도 저가라고 보거든?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주식이 아작난 거야. 지금 사면 용돈은 번다. 임부장, 꿍쳐둔 돈 좀 있지?”


임개미도 주식은 처음이었다.

주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했다. 우리 같이 일 백 만원에 벌벌 떠는 사람은 제1금융권에 따박따박 적금 넣는 게 제일 속 편한 일이라는 게, 그의 레퍼토리였다. 투자에 미숙한, 믿을 곳 금리 1%대 모 은행뿐이라는, 어딘가 나를 보는듯한 임개미였다. 그런 그가 여왕 말에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반응을 보였다. 아저씨를 걱정했다. "하시려고요?" 허나 속마음은 내 대신 물어준 임개미에게 고마웠다.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귀를 열어둔 거니까. 여왕의 선동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 같았다. 적금으로 얼마간 부어둔 종잣돈이, 시간 지나도 거의 제 모양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꼴에 신물 나던 참이기도 했다. 마침 세모전자였다. 여왕의 말이, 아주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날로 임개미는 주식계좌를 트게 되었고, 나는 하루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추가의 검증을 원했다.

여왕을 신뢰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돌다리 한 번은 더 두들겨 볼 심사였다. 따라서 가까워 아무렇게나 묻기 편하고, 물론 주식까지 하고 있는 김개미에게 당장에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여왕과 임개미 대화를 그대로 받아 타이핑한 뒤 전송을 눌렀다.


“대리님! 여기 여왕개미가 주식 추천하는데요. 괜찮은 거 에요? 주식 아무것도 몰라요. 여태 이러고 살았네요.”


이미 세모전자에 발 담그고 있던 김개미는, 여왕 의견에 십분 동의했다.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게 그녀 의견이었다. 그리고 아주 크지 않은 돈, 그러니까 본전 생각에 누워 잠 못 들지 않고, 금세 툴툴 털 수 있는 정도의 금액만 투자해 볼 것을 권했다. 그렇게 선배개미의 추천사까지 듣던 그날로, 나는 개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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