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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09. 2020

나의 N번째 연애

정확히 몇 번째인지는, 모른다. 이번이 N번째라는 것만 안다.


“오빠가 내 첫사랑이잖아. 나 여태 모태 솔로야!”


스물여섯의 입에서 재기발랄한 말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서른 되기 전 간신히 만난 첫사랑이, 오빠 너라고. “첫”은 너무도 중요한 거였다. 여러 연애를 통해 배웠다. 남자에게 첫사랑은 아름다운 썅년이라, 결코 잊지 못할 존재라는 걸. 건축학 개론의 숮이가 괜히 탄생한 게 아니다. 사실 만났거나 스쳤던 남자 모두에게 전했다. 나의 (현)첫은 너이고, 그런 너를, 나는 처음과 같이 사랑하겠다고.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만나는 동안,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한 공백이었다고.


보다 솔직 하자면, “네가 N번째야.”라고 차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침잠하게 만들고 싶 않았다. 대신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이깟 작은 속임은 천 번쯤이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하지만 결론은 “첫”만 알지, 몇째인지는 모른다는 거다.


사실 쉽지 않은 헤아림이다.


“사랑의 기준이 뭔데?

스킨십한 사람?

아니면 오랜 기간 사겨본 사람?”


기준이란 없어 그 자체로 모호한데, 때문에 어쩌면.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었는지 모른다. 내게 첫사랑은, 오직 현존하는 사랑이니까.


*

N이 되기까지, 굳이 나누자면, 오랜과 짧은 만남이 존재했다.


아주 짧게-3주-만나다 그친 인연이 있다.

어디가 “연애” 했다 하기도 쪽팔린, 지난 연애 리스트에 껴놓고 싶지도 않은 사람. 썸 일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어쩐지 손을 잡아 버렸고, 아침과 저녁, 그리고 틈을 찾아 대화했고, 저장된 연락처엔 빨간 하트가 붙어 있었다. 단출한 연애사였다. 그렇다고 또 거시기한 마음이 오가지 않은 건 아니다. 좋아는,했고 때문에 3주 샤랄라공주로 지냈다. 잠깐이지만 “반짝”하고 나는 빛났다. 그리고 헤어졌다. 딱 2주짜리 슬픔이었다.


긴 연애-2년 이상-는 제법 좋은 기억뿐이다.

롱런의 대상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크게 유별나지 않은 데다, 비슷한 웃음 취향, 으뜸 된 공통은 살뜰히 나를 아끼던 사람이라는 것. 연애 내 진심을 느꼈다. 때문에 대부분의 나를 보여주었고, 결과로써 연애 전엔 알 수 없던 뜻밖의 그를 만났고, 우리 둘만 아는 꽁냥꽁냥이 생겼다. 프렌드쉽을 가장한 사랑을 공유했다. 무려 2년이나.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더 긴 시간은 우리에게 없었다. 여기서도 이별을 맞았다. 목을 죄는 듯 한 아픔이 내게도 찾아왔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이 가장 멀어진 한 순간을 하루 모두에 겪었다. 재회에 관한 글 모조리 섭렵하기도, 후회와 회환으로 낮과 밤을 통곡으로, 추잡스런 문자를 하나 날려 보기도. 지난한 헤어짐의 과정을 몇 달에 걸쳐 견뎌내, 마침내 숙한 사람이 되었다.


*

N에게 말했다.


“오빠 내 첫사랑이잖아. 몰랐어?”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내 동공으로 비친다. 아무래도 좋다. 반은 거짓임을 알면서도, 믿음이라는 나머지 반에 집중해 환희하는 너를 볼 수 있다면, 나는 그뿐이다. 행복한 너를 보고 싶다.


그러다 툭, 하고 떨어져 있는 흔적 하나를 발견한다. 남친3이 사준 팔찌, 남친2가 생일날 선물해준 이어폰, 썸남4가 선물한 책. 애틋함이란 털-끝만치도 남기지 않았으나, 물건은 잔존한다. 지난 일이 부스러기처럼 주변에 흩뿌려 있다. 비밀이란 없는 우리 사이지만, 이번 만큼은 입을 닫고 넘어가기로 한다. 매일이 “첫”과 같은 우리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다.


그렇게 전부 합쳐 N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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