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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20. 2020

웅들의 고백

“웅”이 들어간 사람을 제법 안다. 그들은 ㅇㅇ웅으로 불리는 남자들이다. 하나같이 “박”이라는 서네임(SURNAME)을 사용 중에 있다. “웅”자 돌림을 사용하는 “박”씨들 인 셈이다. 박과 웅만 골라 사귄 건 아닌데, 32년 모으다 보니 어쩌다 넷이나 되었다. 나의 지인, 박ㅊ웅, 박ㅎ웅1, 박ㅎ웅2, 박ㄱ웅, 가 그들이다.



*

제일 처음 만난 건 박ㅊ웅이다.

ㅊ웅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즈음 같은 반이었는데, 그 아이하면 기억 남는 건 전교생을 아울러 역대급 말썽쟁이였다는 거다. 애들을 괴롭히거나 때렸던 건 아니었다. 장난이 지나쳐 사고가 된 것뿐이다. 특정기간 근신까지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 음. 담배는 폈어도, 말수는 적은 아이었다. 왜소한 편이었어도, 저보다 덩치 큰 아이들을 이끌고 다녔다. 아마 또래 중 가장 겁 없던 ㅊ웅이라 그런 거 아니었을까, 한다. 떠오르는 건 이 정도다. 


그 다음 알게 된 건 박ㅎ웅1이다.

일로 만났다. 나보다 5년이 넘도록 더 산 사람이고, 때문에 사적인 관계에선 “오빠”에 해당했으나 공적 관계에선 내가 앞서 있었다. 직종을 바꿔 이곳에 온 탓이었다. 서로를 존대했다. 깍듯한 사이었지만 또 아주 그렇지만은 않은 게, 어쨌거나 “같은 세대”라는 바운더리 안에 한데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통했고, 따라서 깍듯을 내려놓고 가끔만 편하게 지냈다. 논 스모커라 했지만, 알코올이 들어가자 옆 사람 담배 한 대를 빼앗아 스모킹 하던 기억이 난다. 흡연자였다.


박ㅎ웅2은 박ㅎ웅1과 거의 동 시절 즈음으로 알게 된 사이다. 같은 일로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금세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박ㅎ웅2은 학교 선배였다. 대충 10살쯤 차이나는 탓에 조상격의 선배이긴 했지만, 결국 일로 만나 업무적으로 대하던 사람이다. ㅎ웅2은 부산 사람이다. 내가 알던 부산사람들과 달리 차분한 말씨를 가졌다는 특징이 있었다. 때문에 340만 부산인에 대한 편견을 깨게 만든 것이 그다. 갱상도 사람도 온화 할 수 있음을 그에게서 배웠다. 대부분 좋은 기억만 남아있다.


박ㄱ웅은 가장 최근에 친해진 사람이다. 따라서 웅들 중 가장 많은 2020년을 함께 보낸 사람이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그와의 역사는 매우 짧은 편이다. 2020년부터 알고 지낸 게 전부다. 다만 깊이만은 결코 짧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ㄱ웅과는 글로 엮였다. 먼저 써 본 사람이라 선생에 해당하는 님일지 모르겠으나, 만날 때 마다 외려 내가 선생 된 듯 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존중이 있는 그라 만날 때 마다 따뜻하다. 낮은 곳에 핀 꽃들을 유독 잘 살필 줄 아는 ㄱ웅을 존경한다. 그를 알게 된 것이 나에겐 감사다.



*

웅들에겐 공통이 하나 더 있다.

그들은 전부같이 나를 호감했다. 직접 고백 들었던 건 박ㅊ웅과 박ㅎ웅1이고, 간접 고백 받았던 건 박ㅎ2과 박ㄱ웅이다. 우연과도 같은 일치를 박과 웅에게서 보았다.


박ㅊ웅은 티 나게 나를 좋아했다. 들키지 않기 위한 노력까지 내게 들켰던, 순수한 아이다. 어느 야자 끝나고 집에 가던 날, 메시지를 보내왔다. “반장 뭐해?”, “응. 반장 뭐해.”, “반장 오늘 이런 일 있었어.”, “응 그렇구나.” 스칠 때면 한 마디도 안 걸어 놓고는, 꼭 멀어진 후에야 건네는 대화였다. 어떤 날은 ㅊ웅의 친구가 ㅊ웅을 내 옆으로 밀기도 했다. 가까이 지내라는 물리적 도움이었겠지만, 나는 ㅊ웅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없었다. 고3이었다.


박ㅎ웅1는 대놓고 고백한 남자였다. 소고기 먹자는 그에게 아니에요, 배불러요, 했다. 그럼 회는 어떻겠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다시 됐어요, 그 날은 바쁠 것 같아요, 했다. 생일이 되고 갖고 싶은 생일 선물을 물었다. 자기 돈 많다고, 갖고 싶은 몽땅을 말하라 했다. 잊지 않고 연락해준 ㅎ웅1에게, 나는 마음만 받겠다고 전했다. 추가 몇 번의 구애가 더 있었고, 더는 연락을 잃었다. 존심에 다양한 스크래치가 났던 것 같다. 언제 나를 좋아했냐는 듯, 지금쯤 누군가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지 않을까.


박ㅎ웅2는 꼭 자기같이 점잖은 편이었다. 걸맞지 않은, 되도 않는 이모티콘 몇 개와 좋은 아침과,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라겠다는 톡을 보내준 정도. 책이 나오고 나서는 나의 팬이 되었다 했다. 어디가 내 자랑 많이 한다고도 덧붙였다. 자랑스러운, 당신이 참 아끼는 동생이라고. 팬 +1이 되었다. 어쨌거나 호감이었겠다.


박ㄱ웅도 자칭 나의 팬이다. 분명 “작가님 팬입니다.”라 말해주었고, 그때로 그런 줄로 알고 있다. 가끔 응원의 톡이나 전화를 보내오거나 걸어온다. 쉬엄쉬엄하세요, 건강 챙기세요, 잘 되실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잊지 않고 있어요. 6에서 7음절의 핵심 메시지와 함께 10줄 정도로 구성된 장문을 보내 준다. ㄱ웅은 내게서 빛을 본다고 했다. 자기 눈에 보이는 그 빛이, 머지않아 수만 독자 눈에도 비추일 거라고 했다.



*

나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박ㅊ웅은 박ㄱ웅을 알고 있는지, 박ㅎ웅2이 내 지인이라는 걸 알고 잇는지, 웅 넷을 이곳에 소개 중인 나와, 나로부터 “웅”묶음 취급 받는 중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나를 호감한 남자들”로 묶여 진 게, 과연 나의 착각만은 아니었던 건지.


아끼는 웅들이다. 그들에 의해 부여된 나의 영롱함 때문만은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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