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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Dec 11. 2020

아직은 딸의 삶이 전부라

<32년째 엄마 사랑해> 비하인드 스토리

엄마는 파주에, 우리 두 딸은 서울에 산다(정확히는 살았다. 얼마 전 동생은 경기도권으로 이사 했다).


달에 한 번 정도 엄마는 서울에 온다. 이 날은 검문 날이기도 하다. 잘 해 먹고 살고 있나, 먼지와 동거 중 인건 아닌가, 이러다 집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하는 염려로 하는 엄마노릇이다. “딸”이라고 전부가 깨끗한 편은 아니며, 특히 “내 딸”은 웬만한 자취남보다 못하고 (그리하여 더럽게)산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방문의 이유는 다양하다. 반찬 날라다 주는 겸, 청소해 주러 오는 겸. 하여튼 겸사가 많은 엄마의 서울행인데, 오자마자 난리가 났다. 난 여전히 잠에 취해있다.


“삐삐삐삐삐 띠리리리.”

“(비몽사몽)어. 엄마 왔어?”

“이게 뭐야 집안 꼴이 이게! 엄마 밤새 일하고 온 거 알면서 좀 치워놔야 될 거 아니야!”


듣동 않고 엄마가 들고 온 바리바리 가방만 서성였다. 서울에서도 살 수 있는 애호박, 고추, 가지 등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말랭이를 잔뜩 말려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뒤져봐야 먹을 거 없어. 아. 갈비찜 싸왔다. 아침 안 먹었지. 데워 먹어.”


엄마밖에 없다.


당직 근무로 한 잠도 못자고 온 엄마는 바카스 한 병을 쭉쭉 들이켰다. 음료의 도움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옷장에 있던 나의 바지와 티셔츠 중 가장 큰 것으로 골라 입고 나왔다. 그것이 그녀에겐 채비였다. 일 마치고 온 엄마는 이곳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지난 달 엄마가 가져다 준 쉰내 나는 반찬 전부를 버리고, 새로 가져온 반찬을 깨끗이 씻은 통에 옮겨 담았다. 냉장고를 휘집어 놓기도 했다. 몽땅 꺼내 행주로 말끔히 닦은 후 엄마 스타일에 맞춰 재배열했다. 집안 구석을 밀고 닦으며 말까지 건넨다. “이 먼지구덩이 좀 봐봐. 여기서 코 박고 잔 거 아니야. 좀 닦고 살라니까 지지바야.” 뚝딱 거리더니 화장실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고무장갑으로 두 손을 무장한 채 솔 하나를 들어 여기저기 쓱싹 인다. 위한답시고 한 마디 했다.


“엄마 괜찮아. 이정도면 충분히 깨끗해.”

“야이(욕이 나올 뻔 한 거 같다). 이게 깨끗하면 어떻게 하니? 눈으로 보고 하는 소리니? 얼른 할 테니까 나가있어.”


오전부터 시작한 엄마노릇은 오후 5시가 되어 잠시 멈추었다. 그 사이 마트까지 다녀와 텅텅 비어있던 냉장고가 가득 차게 되었고, 김치찌개도 한 솥 가득 만들어 놓았다. 슬슬 시장기가 돌 무렵이 되면 내가 보상할 차례가 된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엄마, 오늘 저녁 뭐 먹을까? 뭐 먹고 싶어? 내가 쏠게.”

“글쎄. 뭘 먹을까.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오랜만에 딸이랑 한 잔 해야지?”


엄마가 좋아하는 회 한사바리와 동생이 좋아하는 엽기적인 떡볶이 하나를 시켜 세 모녀가 둘러앉는다. 한 편엔 엄마가 가져 온 갈비찜과 내가 좋아하는 나물과 동생이 좋아하는 파김치도 자리한다. 엄마가 왔다간 후 딱 한 달 만에 맞이하는 풍족한 식탁이다. 노동 후엔 술이 빠질 수 없다. 물론 맥주잔에도 소주가 빠지는 법이 없다. 잔 세 개를 나란히 두고 소주 찔끔, 맥주 가득 따라 엄마 앞, 동생 앞, 내 앞에 한 잔씩 말아 놓았다.


“짠!”

“짠!”

“짠!”


짠이 몇 번쯤 오고가더니, 엄마가 갑자기 고백을 한다. 친정이 없는 엄마는 말했다.


“우리 딸집에 오는 게 엄마는 꼭 친정 오는 거 같아.”

“집이 개판이라도 그래도 우리 두 딸 돌봐줄 수 있어 엄마는 행복해.”


엄마에게 보다 따뜻(하고 깨끗)한 친정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다. 엄마의 행복은 어찌하여 노동에서 나오는 가. 내겐 그것이 “희생”이라는 단어로 재해석 될 뿐이라 32년을 봐온 엄마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딸의 인생만 살아 본 나로써, 그런 엄마의 사랑이 내게 지극한 힘이 된다는 사실만은 깊이 안다. 나의 기댈 곳, 우리엄마.



엄마,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짠하다.

나를 낳기 전, 낳은 후의 엄마 역사만 생각하면 몸서리치게 미어진다. 울 것만 같은데, 그래도 행복하다는 엄마를 보며 나도 더욱 행복해지기로 하였다.

그것이 우리엄마가 내게 바라는 가장 큰 부탁인 걸 알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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