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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Dec 18. 2020

오늘도 당신 이름 석 자 조각중인 당신에게

나 드릴 말있네

#1. 읽으면 되는 거잖아요


여전히 게으른 독서량에 속한다. 일주일에 다섯 권*은 펼쳐 보는, 주변 독서 탑 클라스에 해당하지만, 부지런히 읽어 따라잡아야 할 책이 여태 본 책 보다 훨씬 많다. 치자면 영아기 수준의 베이비다. 찐들과의 대화에 편히 끼지 못하는 때도 많다. 선생님들 소설가 누구의 신작을 전작과 더불어 이야기 하거나 모 철학자의 무슨 철학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면 나는 세상 순수한 눈이 되어 그들을 쳐다본다.


“저는 잘 몰라요.+_+”


순수한 당당함이 내게 있다. 이것은 나의 긍지다.

지나 온 길 보다 가야 할 길이 많다는 것은 행운이기도 하다. 아직은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이고, 따라서 희망을 찾게 될 기회를 만날지 모르는 거고, 하여튼 나아질 일만 남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으로 책을 읽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다섯 권이나 펼쳐 읽는 것도, 당당히 모른다고 외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읽으면 되는 것, 그 뿐 아니겠니. 더딘 내가 잘못은 아니잖니. 그나저나 나 지금 뭔 소리 하니.



*사실이라 “다섯 권”이라 쓰지만 글자 크기를 줄여야 할까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왜냐하면 나의 잡스러움 때문에 다섯 권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도 많아 찔끔 찔끔, 어쨌거나 잡아 펼친다.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뷔페는 싫어하면서 뷔페식 독서는 좋아한다. 변태다.




#2. 글 쓰며 생긴 시선


글을 쓰고 생긴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책 바닥에 쓰인 출판사 이름 확인하기, 또 다른 하나는 작가 이름 불러 보기. 한참 멀었지만,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생긴 호기심이다. 당신은 어떻게 쓰시나요, 어떤 작품을 남기셨나요, 문체는 어떤가요,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묻고 싶어 하는 일이 다시 읽기가 된다. 그러다 한 권을 독파한다.


살피다 보면 내 기준 두 개의 부류로 나뉘어 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작가님과 깡깡 낯선 이름 석 자. 내 기준이라, 게으른 독서량의 나라, 전자가 후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는 건 함정이다. 그래도 알 건 안다! 입에서 입으로 전래되는 작가는 나 또한 아는 척, 가능하다. 읽지 않았어도 하도 들어 알고 있다. 무얼 썼는지 알지 못해도 자주 보아 알고 있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어쩌면 이 소규모가 전부를 대변한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만 글 쓰는 사람인 건 아니다.


후자, 그러니까 깡깡 낯선 이름 석 자는 내가 말하는 반경 10km 짜리 작가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지만 나는 모르겠고, 인생에서 따와 뇌와 손가락 노동을 거쳐 만든 정성어린 작품이라지만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나는 너를 모를 뿐이다. 나도 이 대열 어디에 속해있는 “아직”이다. 드러나지 않아 모르겠지만, 글 쓰는 사람이다. 글 쓰는 사람은 여기도 있다.




#3. 꼭 나 같은 당신을 응원해


나와 비슷한 깜깜이 이름 몇이 마음에 들어온다.


“당신도 있었군요, 아 그런 당신도 있었네요. 수고가 많습니다.”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을 그들에게도 하고 싶어진다.

누구도 나를 모른다 하여 빛나지 않는 건 아니다. 꼭 여럿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 번씩 들어봄직 하여야 빛난다고 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이 전부도 아니며, 보이지 않는 것이 무의미라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여기 쓰는 나에게도 의미가 있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최선으로 자신 이름 석 자 조각중인 당신에게, 이유 없이 응원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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