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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an 08. 2021

에세이가 가진 힘

잘 쓰고 싶어 오늘도 퍼덕인다


일상생활에서 얻은 생각과 느낌을 형식에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쓴, 에세이를 읽어 나간다.

오늘 출근길엔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과 함께 했다. 더 찌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신남뽕짝하게 살아가기 위해 매일 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다짐하고야 마는 생활밀착형 유머서스펜스 다이어트(?) 에세인데, 묘하게 재밌어 요즘 끼고 살고 있다.      


0.1t의 작가는 상시 다이어트 중이다. 반전이라면 여전히 0.1t이라는 거. 지친 기색으로 집에 들어와 고픈 배를 움켜쥐며 작가는 다짐한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그러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두 손은 배달 앱을 켜 야식거릴 주문한다. 숱한 날, 다짐은 다짐으로 끝난다. 키득키득. 어쩐지 예전의 나와 닮아있다. 그래, 다이어트는 반복된 다짐이지. 밤마다 되풀이되는 맹세와 실패가 공감을 일으킨다. 허구 아닌 현존하는 사실이라 공감은 맞장구가 된다. N포탈에 뜬 작가는, 음. 그래, 에세이 맞다.     


읽으며 내가 한 추가 몇 번의 끄덕임이 있다.

새벽 5시 기상을 맞는다는 것과 많은 작가가 쓰는 것 외 벌이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티끌 같은 나를 알리기 위해 홍보 최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지금쯤은 “했다”이지 않을까)는 것. 우리 뭔가 통하는 게, 아무렴 좋은 느낌이다. 알 건 알아, 이것은 마치 전지현이 나와 같은 여자라고, 배고플 땐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잔다고, 얼굴에 눈코입 달렸다고 하는 동조인지 모른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고작 (판매부수를 따질 것도 없이)책 몇 권 낸 나를 비교하는 걸 보면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나도”를 외친다. 공감하고 또 위로 받는 건, 에세이라 그럴 테다.     


많은 걸 품고 있는 게 에세이다. 우선 여기엔 자유가 있다.

일상 속 생각과 느낌을 자유로이 쓴 게 에세이니까. 내 것이라 오직 나의 자유에 맡긴다. 주제, 구상, 구성, 문체, 생각, 느낌, 죄다. 자유라는 것은 주관대로 쓸(살) 수 있음을 내포한다. 생각이고 느낌이며, 시선, 해석, 모든 내 마음일 수 있는 건, 그게 에세이라니까. 사방이 해방인데 어쩌면 그래서 나와 어울리는지 모른다. 막되 먹지 않게 막 쓰는 나니까. 에세이 쓰는 시간을 좋아하는 건 그래서 아닐까, 하기도 한다.     


에세이에는 기지개가 있다.

가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아 책을 덮고 펜을 들게 만드는, 그런 움틈이 있다. 캐주얼한 문체로 일상을 담는다. 작가의 일상은 내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데, 결국 사람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기라는 말의 반증다. 그러다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마저 솟는다. 글은 타고난 재능으로 써야 한다는 편견을 에세이가 지운다. 사실은 아주 쉽게 쓰인 글이 아주 대단한 글이라는 걸 알면, 에세이에도 경애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로가 있다.

응원이 필요한 오늘. 새벽녘 출근길 에세이를 펼친다. 이런 당신이 되고 저런 당신은 버려라, 같은 자기계발서와 달리 채근함 없는 이 시간이 평온하다. 그래, 다 그럭저럭 사는 거지 뭐. 읽으며 이르게 처리해야 할 것들이 떠오르지만 우선 글부터 써야지, 한다. 위로는 읽으며 받기도 하지만 쓰면서도 받아 그렇다. 여기 흰 바탕 검정 글씨로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는 건, 위로 받고 싶은 내가 하는 행위기도 하니까. 당신의 일상을 통해 나 힘을 얻었다면, 이번엔 내 일상을 통해 당신의 힘이 되어 주고 싶으니까.


*

집중이 깊어졌는지 책을 읽다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다급히 정차 벨을 누르고 하차 준비를 한다. 이번엔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앞선 기다림으로 버스 뒷문에 선다. 마주할 추위가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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