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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an 19. 2021

고해성사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우오우오우♬

사랑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됩니다. 내용은 비밀이지만, 이건 말해줄 수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 타고 오는 대화엔 사랑이 있었고, 진짜 어른이 들렸고, 따뜻함이 전달되었습니다. 살짝쿵 오해할 빤한 적도 있었는데, 역시 나의 부족이었습니다. 왜 이리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쟈스민 바(다의)보(배)!


나는 주로 (도움 주고받는 것에도 주체와 객체가 있다면)도움을 주는 주체인 줄로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착각 덕으로, 더 나은 도움이 되기 위해 더 자란 내가 되려는 노력은 이로웠고, 지금도 이롭습니다. 다만 호되게 해로운 일도 있습니다.



*

고백합니다.

나는 주체로 둘러싸인 객체였습니다.

나는 여러분 도움으로 이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티 나거나, 티 나지 않는 방법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당신들 덕분으로 여기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받은 응원, 거기서 힘을 얻어 또 해치고 나아갑니다. “모두 덕분이에요.” 전화로 몇 마디 조잘 거렸더니 “그래서 더불어 사는 세상이래요.”라 고요. 혼자 살 수 있는 건 없다고요.


그리하여 내가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넉넉하지 못하게 자라 학원이며 과외 없이 혼자 크는 데 익숙한 나라, 하여튼 혼자 자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마무시한 오해 속에 살았습니다.


최근엔 부당하다, 공정하지 못하다, 뭔가 잘못 되었다, 라는 온통 억울한 감정이 나를 대체하고 있었지요. 우리가 건넨 도움 싹 잊어버린 그 분이 미워, 미워하기 바빴습니다. 소란스러워진 머리로 기운마저 축 쳐져 있는데, 오늘 문득. 도움의 주체이기만 한 줄 알았던 나를 보며, 받은 도움 싹 잊었던 나를 반성하며.


“나부터 잘하자.”

“나나 잘하자.”


절친한 동기 은주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일 있습니다.


“스님이가?ㅋㅋㅋ 쟈스님.”


오늘은 쟈스민이 아닌 쟈스님입니다. 한 번씩 해탈할 때가 있는 데, 오늘도 그런가 봅니다.(낄낄낄낄 껄걸껄껄ㅋㅋㅋㅋㅋ) 사랑의 전화 한 통이, 나를 반성하게 합니다.



*

쟈스님은 지랄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실컷 욕하고 나서 "에고, 조금 과했나." 합니다. 비난 뒤엔 꼭 후회가 따릅니다. 참아 볼 걸, 이해해 볼걸. 누구 욕하는 건, 그래서 삼가게 됩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후회가 싫어 그렇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나라서가 아니라, 지금과 1시간 뒤가 다를 수 있는 나라서 그렇습니다. 증오하다, 좀 짠하기도 하다, 완전 별로다, 욕이 과했나 싶기도 하다가.

누구를 미워하는 일, 저한테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이런 지랄스러운 나를 만나야 하니까요.


그런 내게, 미워하는 감정을 글로 남기는 건 위험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글에 남겨진 내가 단 하나의 나로 보이기도 하니까요. 다양한 내가 있는데요. 수시로 바뀌는 나도 있는데요.(다중이?) 금세 미워하는 마음 걷힌, 하얀 쟈스민이 되어 있는 게 보통인데요. 따라서 (확실하다고 여겨 영원할 감정이란 없겠지만 특히)누구 미워하는 글 쓰는 건 참 꺼려집니다. 착한 건 아닌데, 그렇습니다.(그래도 싫어하는 사람 있음. 분명 있음ㅋㅋ영 별로)


어제 글 썼다 지운 것(그랬다 다시 살린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돈이 뭔지, 당신 보인 모습 앞에 실망스러움 가득이지만, 화 많이 나지만, 부당하다는 감정은 지울 수 없지만. 그 분과 나는 인간의 관계로 맺어진 사이니까요. 그래도 존경했던(하는) 분이니까요.(진짜 그러지만 않으시면 좋겠는데ㅠㅠ)



*

약 한 달 반 만에 헬스장 가 운동하고 오는 길입니다!

상쾌합니다. 구름 잔뜩 꼈던 감정도 많이 털고 왔습니다.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데헤헤헤헤헿


이따금 엄마가 해주는 네 음절이 떠오릅니다.


“으유.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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