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Jan 27. 2021

우리는 괄호의 말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엔 사실 괄호가 생략되어 있다.


“(빠른 89지만)올해로 서른둘입니다.”

: 나를 안 빠른 89로 안다. 고마워. 한 살 어려진 기분이야.

“회사 다니는 게, 지극히 재미(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데, 요즘은)없다.”

: 네가 거기서 하는 일 좀 많겠니, 라며 애잔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나쁘지 않다. 칭얼대는 맛이 있다.

“포기하지 마세요, 할 수 있어요. 당신이 기다렸던 말이잖아요.(주저앉을 뻔 했던 우리가 이제와 할 수 있는 말이에요)”

: 당시의 연약한 나는 잊고, 지금의 강한 나만 남아 쓴다. 촤하.


작가 정도가 되니, 생략을 기교 삼기도 하는 나다. 요령 없이 쓰는 글은 지루하기 딱 좋다. 불필요한 전부를 퍼다 날라 어쩌라고요, 싶은 글은 집어 던지고 싶게도 하는데, 이럴 땐 “이 안()에 잠시 넣어두세요.” 괄호가 작가와 독자 사이 밀당을 만들어 냈다. 줄곧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하드라마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기도 하다. 괄호 열고, 괄호 닫게 만든 사소한 사실 샅샅이 열거하자면 태조왕건-200부작-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이랬는데, 아아,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 한다면, 나는 좀 다중이 같이 지랄 맞아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나 갖다가 너는 밤낮 장난하냐, 나 한 순 간에 새 돼쓰, 당신은 나의 비너스!”


글쓰기를 지난한 일이 되게 하고 싶지 않다. 쓰는 내게 괄호가 정당화 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이것은 삶에 있어 합당한 태도가 되기도 한다. “거짓된 일 없고, 다만 감춘 것뿐이로소이다.” 심지어 여기엔 미덕이 있는지 모른다.

꼭 하고 싶은 말을 “배려”라는 구실로 참고-(나도 많이 피곤하지만)“그래, 내가 대신 할게.”

“예의”라는 명목으로 닫고-(이미 제 가격이라는 걸 알지만, 굳이 깎아서 이 금액으로 만들었다는 말에)“아, 정말 감사합니다.”

“나의 무지일지 모른다.”는 조심성으로-(우환이 있을지 몰라. 그래서였을지 몰라) 생략 한다. 우리는 괄호의 삶을 산다.


나를 봐도 그렇다.

오늘만 해도 나는 무수한 괄호를 차용했다.

하고 싶은 말엔 괄호가 생략되어 있었는데, “괜찮다”는 나의 말에 (괜찮지 않지만)이 그랬다. 배려라는 이유로 괄호를 열고, 괄호를 닫았다.


(잘 쓴 것 같기도, 못 쓴 것 같기도 한데. 흠.)




↓ 절찬 판매중♡

http://www.yes24.com/Product/Goods/96977330?OzSrank=1



작가의 이전글 오늘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