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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Feb 01. 2021

E17. 네가 좋은 이유

네가 좋은 이유를 대라 한다면 날이 새도록 이를 털겠지만, 오늘은 콕 집어 이거 하나만 이야기 하고싶다.


타고나길 예체능형은 아니다. 미술 수업 때면 도화지에 물감 대충 펴 발라 시간 때우기 바빴고, 국어 시간이면 ‘도대체 뭐라니.’하며 개무시했고, 체육시간이면 체육복 입을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았다. 미술, 국어, 체육 셋이 박빙으로 싫었다. 예술과 체육에서 길을 잃은 나는, 공부 열심히 해 월급 많이 주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대안이었다.


특히 체육은 나랑 상극인줄로 알았다.

영(어)수(학)는 좀 했어도, 체육은 좀 못했다. 체육은 선생도 별로였다. 초중고 내내 만났던 체육 선생은 한결 같이 구렸다. 친해지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더 어릴 땐 운동을 배워보기도 했다. 인생 6년차에 해본 에어로빅과, 흰 띠에서 멈춘 초1의 태권도, 음. 더는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이게 다인가 보다. 갖기 힘든 관심이던 모양이다.


어찌어찌 체육 없이도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 초년생이 겪는 “이러려고 취업한 건 아닌데.” 블루가 내게도 찾아왔다. 울렁이는 속을 먹음으로 풀고자 했다. 먹었고, 그럼에도 풀리지 않았고, 남은 건 살이 되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그 순간이 내게도 왔다. 자발적으로 찾은 운동인 걸 보니, 당시의 나는 바닥을 찍은 상태였나 보다. 물론 질질 이었다. 운동 없이도 잘 살아 온 나였다. 때문에 고까운 마음으로 끌려갔던 헬스장이지만, 지금에 와 보니 덕분만 남았다.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사사로운 상념과, 회사 모 쌍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꼬리가 꼬리를 물며 만들던 부정적 생각을 적어도 운동할 때만큼은 멈추게 되었다. 그때로 현재에 집중함이 무엇인지 배웠다. 운동할 땐 철저히 현존할 수밖에 없다. 운동 전의 나는, 과거에 머물러 미래 걱정까지 하고 살아 현재만 쏙 빼놓고 지냈다. 겁나 미련하기 그지없었다.


운이 좋았던 건, 오직 단련하는 팔과 다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잡념에 쓰일 에너지 모두를 이곳에 쏟을 수 있도록 강하게 키워준 선생을 만난 거였다. 선생은 지독하게 굴렸다. “이정도 운동한다고 죽지 않는다.”가 그의 신조였다. 죽진 않았지만, 죽겠다 싶을 만큼 힘들 땐 대놓고 욕하기도 했다.


“아 ㅅㅂ!”

“하하하. 어쭈? 욕까지 해? 좋아. 어디 한 번 해보자.”


참욕을 하는 나를 보며 참된 교육 중임을 직감으로 깨달은 참선생이었다. 욕하는 나를 보더니 미소를 흘겼다.


부인할 수 없이 참된 시간이었다. 멘탈이 건강해졌다. 건강하게 사고하고, 건강하게 먹고, 건장한 몸이 되었다. 몸이 튼튼해져 정신이 튼튼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몸과 정신은 하나니까.


무게 들 때면 나는 이것에 모든 내 정신을 쏟아 붓는다. 집중을 놓치면 이것에 의해 깔려 죽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운동하다 운명을 달리하고 싶지는 않다. 이왕지사 율동대신 운동하고 싶은 욕심도 크다. 24시간 중 1시간을 덜어 내 이곳에 왔으므로, 아깝지 않게 보내고 싶다. 하는 동 마는 동의 깔짝깔짝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멋진 사람은 그런 거랬다. 에너지는 늘 부족하다. 운동에는 온 몸의 집중과, 물리적 힘과, 화학적 반응에 쓰일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사로운 상념에 사로잡힐 틈이 없다. 내게 속해 있는 온 세포가 긴장해 있다. 이만한 세포의 활동은 없다고 본다. 포악 동물에 물려 죽기 직전이 아니라면, 운동할 때 밖에 느낄 수 없는 세포의 쭈뼛섬 일거다.


나는 오늘도 값진 집중을 하였다. 개운함이 말해준다.

흩어져 다니던 머리의 부정이 모두 빠져나가, 한결 가벼워졌다. 현존이라는 것, 이토록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을 오늘 1시간을 통해 다시 깨달아 몹시도 기껍다.


헬스장을 문 밖을 나서며 이런 생각이. 아무래도 예체능계열이 내게 맞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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