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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Feb 22. 2021

용서의 마법

호잇

턱 주변으로 벌겋게 뾰루지가 올라왔다.

요 며칠 먹고 먹어도 허기가 가실 생각을 않더니, 결국 사단이 났다. 벌겋게 익은 뾰루지가 터져, 오늘은 노랗게 여물기까지 했다. 여간 보기 싫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올 것이 오겠구나.’ 무딘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마법에 걸렸다.


한 달에 한 번 여자에게 찾아온다는 그 날이 왔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 받아들인다. 턱 밑으로 올라오는 뾰루지가 볼 상 사나워도, 세수 할 때마다 성가시게 아파도, 유독 몸과 얼굴이 부어도, 배가 나와도, 온종일 피곤한 나를 만나도 도리가 없다. 하여튼 평소와는 다른 내가 되어있다. 때로 달라진 나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의심부터 하기도 했다. 좀 과하게 잘 먹히는 데, 이것은 마법의 시그널인가. 쵸코쵸코한 게 아까부터 떠오르던데, 곧 인가. 마음이 밴댕이 소갈딱지 같아지는 게, 아무래도 만날 것 같아. 사실 그저 호르몬 탓일 뿐이다.


불가항력과도 같아 대부분이 용서가 된다. 조금 많이많이 먹어도 “괜찮고”, 사소한 짜증을 부려도 “그럴 수 있고”, 배가 나와도 “곧 들어 갈 거”라 믿는다. “마법”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여기서 온 것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출근 하지 않는 마법은 부릴 수 없지만,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지의 고통이라는 이유로 젠더리스, 그렇게 성별 구분 없이 여와 남으로부터 이해 받는 마법 같은 날이다.


자타가 용인하는 이 날을, 오늘 글쓰기 시간에도 부리고 싶었다.

이른 새벽부터 어둑해진 밤, 이 시간까지 몹쓸 호르몬의 지배를 받고 지냈다. 지배에 의한 삶, 이것은 고난이자 고단이다. 고단함이 극에 달한다. 새벽에 쓸 것을 밤에 쓰겠다며 차 순위로 미루어 두었는데, 밤이 되니 한 입으로 두 말이 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고마 시마이 하고, 디비 자고 싶다. 마법을 써 볼까, 고민한다. “피곤해 스킵하겠습니다.”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니까. 언제나 내 죄를 셀프-사하였으니까.


그러나 글이 밟힌다. 짙게 밟히는 미희의 자정녘 진심과, 영식의 곱게 지어온 글 밥. 몹쓸 책임감에 아주 약간이라도 쓰기로 했다.


몽롱-한 기운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간다. 졸리니 글도 안 써진다. 그래도 이만하면 장했다. 언제나 정당화 되었던 그 핑계를 미희와 영식이 거두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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