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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r 02. 2021

오늘은 반드시, 기필코 꼭, 이른 아침에 글을 쓰겠다 마음먹었다. 지난 3주를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3주간 많이 쓰렸더랬다. 먹고 자는 일 외 가장 우선에 둔 쓰기를, 나와 정한 새벽나절 쓰지 못한다는 건 그런 거였다. 마음에 진득이 달라붙은 듯, 찐득찐득 질척이는 불편함이다. 그렇다고 쓰지 않았다 할 순 없다. 하루 어느 시간에도 글과 함께이긴 했다. 업무용 메일을 보내고, 수업 중 글과 관련한 글을 써 보이고, 줄기차게 카톡 했다(제일 많이 한 말은 ㅋㅋㅋㅋㅋㅋ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질척임은 “쓰기를 최우선에 두지 못한 나” 때문이다.


마음이 고되었던 건 작년 11월말께부터였던 거 같다. 이사 준비로 고되었다. 집 주인은 “새로운 세입자한테 보증금 받아야 네 전셋돈 돌려 줄 수 있어요. 그냥은 힘들어요.”라고 했고, 은행에선 “원하시는 만큼 한도가 안 나와요.”라 했다. 이사 가야 하는 집과, 은행, 그리고 이사 갈 집 사이에 동동 구르기를 두 달했나.


그 즈음 엄마로부터 생경한 소식을 듣게 된다.

자기 관리라면 으뜸이라는 우리아빠가, 위암 판정을 받았단다. 다행히 조기라 시술 수준으로 끝날 것 같지만 다만 염려 되는 건, 암이 조금 더 깊이 스며있지 않을까 하는 의사 소견 뭐 그런 거라고. 정확히는 검사해 봐야 아니, 일단 알고만 있되 걱정은 하지 말라고. 그때로 정신의 8할이 아빠에게 향한다. 이유 없이 전화해.


“아빠! 뭐하세요? 으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에이 시술 뭐, 그까짓 거. 나쁜 거 말끔히 떼러 가는 건데요 뭐, 우리 아빠 파이팅!”

“아빠! 저에요! 뭐해요? 그냥 전화해 봤어요! 아주 많이 사랑해요!”

“그래. 건강 챙겨라.”

기백 넘치던 목소리에 위풍이 쏙 빠진 게, 한참을 마음 가에 맴돌았다.


완성된 다섯 번째 초고를 투고하기로 했다.

쓰면서 느낀 남다른 기운에 예감이 좋다. 나의 n번째 책이지만, 많은 독자에겐 첫 책으로 알려질 그 책이 되었으면,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투고를 한다.


“안녕하세요. 글 쓰는 쟈스민입니다. 귀 출판사에 투고하오니, 부디 예쁘게 봐주시면 정말 깊이 매우 진짜 진심 존나 감사하겠습니다.”


깜깜이지만, 나에게도 바람이라는 게 있어 함께 작업하고픈 출판사에 먼저 투고한다. 두드림 끝 계약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다시 한 번 밟는 거다. 그리고 이번 주 마땡, 미땡, 위땡, 글땡, 메땡 출판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저희 출판사의 방향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원고로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ㅇㅇ, 까이는 중이다.


수업을 새로 기획해야 한다.

아무래도 수강생들이 지쳐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 말은 내 수업이 지루해졌다는 말일 수 있어, 그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수업 크기를 늘리겠다는 새 목표가 생겼다. 시작은 필요한 몇에게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소정의 수업료를 받는 것이었는데, 여러 조언과 동기가 모여 계획이 바뀌었다. 기획이라는 건 참 재미지지만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여 머리가 쥐 터지는 고통을 낳는다. 깨알 디테일이 필요한 작업이다. “대충”을 지향하는 나로썬 아주 고단한 일이다. 좀 쉬고 싶다는 굴뚝이 마음같다.


회사에 불어 닥친 연례행사 삼종세트가 나를 죽인다.

엊그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하마터면 뉴스거리 될 뻔하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문제는 왜 하필 지금이냐는 거다. 야근해도 모자랄 판에, OVERTIME은 절대 피하기 위해 근무시간 극도로 달리고 있는 내게 왜 하필 이맘때! 나 없어도 된다, 하면 또 서운하겠지만 요즘만큼은 나 없이 좀 잘해 보세요, 하고 싶다.


어느 때건 반드시 확보해야 할 나의 시간, 1) 운동 하고, 2) 글을 쓰고, 3) 쉬고(잠자고), 4) 놀고 마시고를 박탈당했다. 심지어 올 5월까진 단편 소설 하나를 완성하겠다는 2021년 세 번째 목표에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는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적지 않은 부하를 마음에 지고 살았는지, 나는 퍼졌다. 쉬고 있어도 격하게 쉬고 싶다. 그렇게 3주가 흘렀다.





지난 월요일,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요청한 만큼의 대출도 완벽히 실행되었고, 등기부등본 상 남아 있던 채권도 말끔히 말소 되었다. 따박따박 대출금 이자 납부하는 일과 이제 여기, 우리 둘 잘 사는 일만 남는다. 아, 아직 배송 받지 못한 암막 커튼과 이케아 책상만 오면 된다.


그리고 내내 가졌던 믿음과 같이, 아빠 몸에 있던 암 덩어리는 깔끔히 제거 되었다. 시술이라 가볍게 30분 걸렸고, 짧지만 힘겹던 그 시간으로부터 아빠는 청결해졌다. 일주일 뒤엔 조직 검사 결과, 깊이 스민 것은 없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나만 아빠에게 잘하면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하지만 않으면 된다.


지난 주 투고한 초고는 몇 대형 출판사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았다. 솔직 하자면 ‘내 글을 놓친 것 후회할 거야!’ 같은 발악이지만, 이해는 한다. 고위험-저수익의 가능성보다 저위험-고수익이 맞을 테니까. 아직 나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깜깜이 작가니까. 그럼에도 단단히 자리 잡은 신념은 어쨌거나 빛을 볼 거라는 것. 이번 초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는 것. 될 때 까지 하겠다는 것. 전작에 비해 1% 올라간 인세와, 마켓팅을 위해 활발히 움직여줄 그곳과 작업하게 될 거라는 것. 예감이 좋다.


수업 기획도 거의 마친 상태다.

스스로 “머리 쓰느라 고생했다” 싶을 만큼 버닝했다. 잘했다. 수고한 나에 대한 보상은 차차 기대하기로 한다. 쓰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과정 자체로 발전이 있어 조급한 보상은 양보할 수 있다. 그나저나 고생했다.


회사 일도 다음 주 화, 수면 삼종 중 일종이 종결된다. 후후. 가뿐히 숨 돌릴 수 있을 거 같다. 루팡의 세계로 복귀 준비한다(사실 사장이 내 노동력을 루팡하는 거지만).


이른 아침 가장 먼저 한 일이 “쓰기” 일 수 있던 건,

모두가 한결 나아진 덕분이다.

여유를 찾거나 만들어, 깨닫고 나니, 평온한 금요일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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