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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r 11. 2021

글 꾸는 직장인

본업을 서울 도심 어느 한 가운데에 두고, 노트북과 함께 어디서든 나는 글을 쓴다.

두 개의 일은 연관됨 없어, 하나를 할 때 또 하나는 철저히 잊히게 마련이다. 글 쓰는 중에도 09시가 되면은 글 문을 싹둑, 닫아 아웃룩을 열고, 아웃룩이 닫히면 다시 쓸 수 있다. 이럴 때 아니지. 작업표시줄 맨 앞에 나열 된 아웃룩 열어 밤 새 밀린 메일을 확인한다. 그리고 답장 한다. “수고 많으십니다.”로 시작해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글. 내가 저 세계 글 쓰는 쟈스민이라는 사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고 많고 감사하다는 말로 시작과 끝을 맺는다. 소울리스.


열고 닫고를 하루 서너 번은 더 하다 보니, 가끔 내 정체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혼재 되어, 일하며 글을 찾고, 글 쓰며 일을 떠올린다. 분주하고 또 분주하다. 더욱 힘든 날이라 하면, 마음에 짐이 쌓일 때다. 그러니까 쓰기를 최우선에 두지 못한 날이 연속적일 때다. 좀 바쁘긴 했다. 5년 치 회사 심사가 이틀에 걸쳐 진행 되었고, 하루 지나 다음날엔 저 멀리로 출장을 다녀왔다.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다달이 받는 급여는 필(必)요하여 쉴 수 없다.

월요부터 금요까지, 출근이 없다면 생존을 위한 기본도 없다. 기본급, 이라는 말은 여기에 쓰이는 말이다. 기본으로 먹고 살(만큼의) 급여. 고로 빠짐없이 출근한다. 진심 쏙 빠진 채 여기, 책임만 다 하다 퇴근하는 시간 일지라도. 하여야만 하여 하는 일이 나의 먹고 사는 일이고, 되고 싶은 꿈은 때로 거추장하게 된다.


어쩐지, 내 꿈이 먹고 사는 일에 가려지려 한다. 즐겁게 잘 살자, 와 같은 삶의 지향 외 꿈다운 꿈이라는 걸 갖게 된 지 이제 막 2년차 접어들려 하는데, 나는 요즘 지쳐 보인다.


어제는 병가를 내기도 하였다.

코로나, 라기엔 증상이 너무 경미했고, 꾀병이라기엔 제법 진지하게 아팠다. 아침 눈 뜨자마자 망설임 없이 병가 낸 건, 그래서였다. 그리고 투고를 시작했다. 두드리면 열리나니. 열릴 때 까지 두드려야 하나니. 투고 메일에는 아픈 기색 하나 없도록 웃음(^_^)과 깨알 하트(♡)를 표현해 보였다. 그제야 진짜 쉴 수 있었다.


말을 잃은 것 마냥, 글을 잃었다. 몸이 축 나고, 쓸 힘을 잃었다. 머리가 멈추자, 손이 망설인다. 한 시간도 안 되어 한 바닥 반은 채우던, 타자가 사고를 쫓지 못하던 성미 급한 글쓰기가 되지 않는다. ㄷ[디귿] 한 번에 backspace 한 번 번갈아 누른다. 누르고 지워 남는 건 없다. 대화에도 공백을 극도로 힘들어 하는 데, 여기 흰 백지 위 빈 공간은 더욱 싫다. 머리가 멈추자, 손의 움직임을 잃었다.


아직은 아득 하기만한 그 날을 위해, 이러면 아니 되는데. 똥(같은 글)이라도 어쨌든 매일 싸(쓰)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잊으면 아니 되는데. 그러시면 아니 되옵는데. 장어라도 쳐묵쳐묵해 기력 차려야 하는데···


일어난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까딱, 하면 쥐고 있던 나의 꿈이 단숨에 산산조각 나 버릴 수 있음에, 아찔함을 느낀다. 꿈이란 자유의지에 의해 유지되고, 커지고, 결국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런 것이겠지. 자유도 현실 앞에 녹녹찮음을 느끼는, 넋이라도 있고 없고 일주일 쉬고 싶던 어제까지.


먹고 사는 일 앞에 꿈이 뒷걸음질 칠 때, 놓지 않겠다고.

언젠가 글과 관련해 치열하게 고민해 보았고, 하루 빠짐없이 글 썼고, 책까지 냈었던, 그런 사람이었다고 조심스레 과거의 나를 내보이는 일 없도록

내 오른 손 앙 물린 나의 꿈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허공에 그려본 그 날을 목요가 된 오늘 다시금 부여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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